늘 푸른 몽골? 77% 사막화... 영수증 아껴 '한국 황사 원인' 막는다

입력
2024.09.13 04:30
12면
[요즘 뜨는 몽골, 실은 기후위기 최전방]
사막화 탓 55년 동안 모래폭풍 빈도 3배 늘어
몽골 모래, 북서풍 타고 한국 황사·미세먼지로
기후위기 대응 위해 '2030년 10억 그루 심기'
CU·세븐일레븐·BC카드 등 영수증 비용 아껴
15만 평 숲 조성, 모래 이동 줄고 마른 땅 복원

편집자주

요즘 뜨는 관광지 몽골. '윈도우 배경화면' 마냥 가축이 뛰노는 푸른 평원 먼저 떠오르지만, 실상은 국토 77%가 사막화 영향을 받는 '기후위기 최전방'입니다. 지난 80여 년간 기온이 2.49도 올라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빠르게 뜨거워졌죠. 땅이 말라붙어 갈수록 잦아지는 모래폭풍은 한국의 황사, 미세먼지로도 이어집니다. 한국보다 먼저 기후재앙이 닥친 몽골을 찾아 '나무 심기' 등 대응 방법을 들어봤습니다.

"저 어릴 때는 여기도 나무랑 풀이 자랐어요. 지금은 사막으로 바뀌고 모래 이동도 심해졌죠. 풀이 전에는 정강이 높이까지 올라왔는데, 가축이 늘고 관광객도 많아지면서 지금은 보시다시피 얼마 못 자라잖아요."

지난달 29일 몽골 사막화 지역인 아르항가이 아이막(道) 엘승 타사르해(분절된 모래) 사막에서 만난 엠 바야르바트(42)는 손가락 한 마디가 채 안 되는 땅바닥의 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한국인 관광객에게 '미니 고비사막'으로 유명한 곳이다. 외지인이 보기엔 '항상 사막이었겠거니' 싶지만, 그가 어린 시절에는 초목이 무성하고 수종도 다양했다는 것이다.

요즘 뜨는 관광지인 몽골은 넓고 푸른 평원으로 유명하지만, 실상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기후변화 직격탄'을 맞은 나라다. 저개발 국가인 만큼 글로벌 탄소 배출량 비중은 전체의 0.1%에 불과하지만, 평균 기온은 1940년부터 지난해까지 2.49도나 급상승했다. 세계 평균의 2배다. 국토도 76.9%가 사막화 영향을 받고 있다(2020년·몽골 자연환경관광부).

러시아·중국 사이에 낀 몽골은 한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지는 않지만, 양국은 실상 '기후 이웃'이다. 몽골 대륙이 말라붙을수록 모래폭풍은 잦아지고, 이 중 일부가 봄철 북서풍을 타고 황사와 미세먼지로 한반도에 유입되기 때문이다. 현지 사막화를 막고 국내 황사 피해도 막고자 우리나라 정부 기관과 기업, NGO 등이 몽골에서 나무 심기와 숲 조성을 하는 이유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말 몽골 현지를 찾아 기후변화 심각성과 현지 대응 노력을 살펴봤다.


지구온난화에 과방목까지... 말라붙은 몽골 땅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2시간 반 거리인 투브 아이막(道) 바양항가이 솜(郡)에는 사막화 방지를 위해 대한민국 산림청과 한국임업진흥원이 조성한 '상생의 숲'이 있다. 지난달 27일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봤을 땐 푸른 평원인 것 같았지만, 막상 땅을 디뎌보니 쩍쩍 갈라진 모습이었다.

몽골에서 20여 년 동안 숲 조성 활동을 해 온 신기호 푸른아시아 몽골 지부장은 "2년 전 이곳에 폭우가 오자 주민들이 '산에서 강이 내려온다'며 도로 침수 전에 서둘러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라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사막화로 땅이 굳으면서 내린 비가 흡수가 안 되는 탓에 마을 전체가 그대로 침수된 것이다. 초기 단계인 이곳 조림장에는 현재 2만8,000그루가 식재된 상태다.

'과방목', 즉 너무 많은 가축을 기르는 것도 사막화의 주원인이다. 사막화 지역인 어기노르 솜의 이쉬 우르차이흐 솜장(군수)은 "전에는 다양한 풀이 자랐지만 갈수록 가축도 못 먹는 잡초가 늘고 식생 종류도 줄고 있다"며 "기후변화 요인에 더해 방목지 수용력을 4배, 5배 초과할 정도로 많은 가축을 키우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몽골 정부는 녹지화 사업과 함께, 유목민들이 가축의 '양보다 질'에 관심을 두게끔 하며 축산업 현대화를 유도하고 있다.

폭우와 폭염이 점점 잦아지는 한국처럼, 몽골도 기후변화 여파로 겨울철엔 극한 한파, 여름철엔 극한 가뭄과 폭우 등 이상기후가 빈발하고 있다. 여전히 인구의 4분의 1이 전통적 유목민 생활을 하는 이곳에서 기후재앙이 닥친다는 것은 일순간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생존의 위협'이기도 하다.

서른 해 가까이 유목민 생활을 했던 베 솝드(40)는 2010년대 초 닥친 한파로 가축 500마리가 떼죽음을 당하자 쓰레기장 생활을 하는 '기후난민'으로 전락했다. 생계를 잃고 수도로 강제이주한 그는 "여섯 아이를 홀로 키우려면 재활용 폐기물을 주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올겨울에도 조드(기상이변)로 국토 80% 이상 눈으로 뒤덮여 500만 마리 넘는 가축이 폐사했으니 이상기후로 생계를 잃고 도시 빈민이 되는 일은 현재 진행 중이다.

"세 그루 심으면 3대가 복, 한국인들 감사하다"

몽골 정부는 핵심 기후대응 방법으로 '숲 조성'을 추진 중이다.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은 2021년 유엔총회에서 "2030년까지 10억 그루 나무 심기 캠페인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탄소 흡수와 저장이 가능한 효과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인 동시에, 마른 땅에 나무를 기르다 보면 좋은 흙이 다시 쌓이고 비옥해지며 생태계 복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림 활동에는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 기관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찾은 어기노르 솜 '페이퍼리스 생태림'은 편의점 CU 운영사인 BGF리테일, 세븐일레븐 운영사인 코리아세븐, BC카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NGO 푸른아시아와 협력해 조성한 15만 평 규모 숲이었다. 한국 소비자들이 편의점에서 종이 영수증을 받지 않을 경우, 그 아낀 돈을 환경기금으로 적립해 몽골에서 나무를 심는 것이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6만 그루 이상을 심었다.

바람을 막기에 적합한 포플러, 비술나무 같은 방풍림을 우선 심기 때문에 국내 유입 황사 원인인 '모래폭풍' 방지 효과도 있다. 이곳 주민이자 조림지 경비원인 데 바트바타르(66)는 "예전에는 모래 이동이 많고 주거지 울타리 주변에 모래가 많이 쌓였는데 숲이 생긴 이후로는 모래바람이 잘 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막화 여파로 1960년과 2015년을 비교하면 모래폭풍 발생 일수가 3배 급증한 만큼, 더 많은 숲 조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26년간 몽골 자연환경관광부에서 일하며 산림청장 등을 지낸 체 담딩 푸른아시아 고문은 "몽골 옛말에 나무 세 그루를 심으면 삼대에 걸쳐 복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이 같은 주민 참여형 조림 사업은 열악한 상황의 몽골 주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임농업 지식을 전파해 환경 난민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며 "중요한 사업을 지원해 준 한국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울란바토르·아르항가이(몽골)=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