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꿀 플랫폼의 미래

입력
2024.09.12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어떨까.

당장 아침 기상 알람이 없어 지각을 할 것이 뻔하다. 회사와 연락이 어려워지고 수많은 단체 대화방에 참여하지 못해 사회활동에서 소외될 것이다. 무엇보다 플랫폼을 이용하지 못해 세상과 단절될 것 같다. 각종 정보 검색과 뉴스를 모아 보는 네이버나 구글은 물론 가격을 비교하며 로켓 배송을 보장받는 쿠팡, 저녁 식사나 야식 때마다 찾는 배달의민족 등을 쓰기가 어렵다.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구입하려면 먼 옛날처럼 항공사에 직접 전화해 일일이 문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삶'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 독일 베를린 출장길에 관람한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에서 가전기업들은 이런 미래를 보여줬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공간을 연결하여 가전이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것.

손에 쥐고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스마트폰도 아니고 집 안에 모셔둔 냉장고나 세탁기가 어떻게 세상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가전 업계는 해답을 '보이스 인터랙션(상호작용)'에서 찾고 있었다. AI를 활용해 고객이 일상 언어로 대화하면 가전과 IoT(사물인터넷)로 기기를 제어하고 창의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만든다는 뜻이다.

종전의 AI 스피커는 "몇 시야?", "알람 맞춰줘"와 같은 간단한 명령어만 이해했다. 하지만 뛰어난 AI를 두뇌로 장착한 AI 가전(혹은 디바이스)은 여러 가지 명령을 담아 말해도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심지어 앞의 대화를 기억해 다음 명령까지 스스로 생각해낼 만큼 똑똑해지고 있다. 만약 AI 냉장고에 "오늘 일정이 뭐야?"라고 물으면 냉장고에 장착된 스크린을 통해 일정을 알려주고 출근길 교통 상황 점검은 물론 점심 장소 예약까지 한 번에 도와준다. 냉장고는 세탁기와 연결돼 있어 나의 퇴근 시간을 예상해 빨래도 해준다.

냉장고는 음식만 잘 보관하면 될 텐데 굳이 AI를 심으려는 이유가 뭘까. 가전 업계 고위 관계자는 "스마트폰 계속 보면 눈 아프지 않아요? AI 비서가 알아서 해준다면 불편함을 참으면서 스마트폰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상상은 AI 비서인 '홈 로봇' 덕분에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IFA에서 삼성전자는 반려 로봇인 노란 공 모양의 볼리, LG전자는 자율주행 기술로 움직이는 로봇 AI 홈 허브(코드명 Q9)를 나란히 전시했다. 아직 연구개발에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야겠지만 영화 '아이언맨'의 AI 비서 '자비스'가 나를 졸졸 쫓아다닐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AI 기술이 제조업에 불러온 혁신은 국내 플랫폼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 간 경계가 급속히 무너지고 기업 간 영역도 희미해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더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이제 가전기업들은 AI 두뇌라고 볼 수 있는 거대언어모델(LLM) 성능 경쟁이 마무리 단계에 왔다고 판단하고 빅테크 AI 모델을 선택(혹은 하이브리드 사용)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AI 기술이 스마트폰과 다른 형태의 플랫폼 산업을 구축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IFA에서 인텔의 부스는 한산했다. 반도체 거인 인텔이 AI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추락 중인 사례를 국내 시장에 안주했던 플랫폼도 눈여겨봐야 할 때다.



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