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보·보수 세력의 상징적 존재로 통하는 두 노장 정치인이 서로 정반대인 이념 지향을 무릅쓰고 의기투합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다.
버니 샌더스 미국 연방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은 8일(현지시간) NBC방송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체니 부녀(딕 체니 전 부통령과 그의 딸 리즈 체니 전 연방 하원의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런 공개 칭찬은 뜻밖의 일이다. 공화당 정권인 조지 W 부시 행정부(2001~2009년) 당시 부통령으로 재임하며 보수 매파(강경파)를 이끌었고 2003년 이라크와의 개전을 적극 주장하기도 했던 딕 체니는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반면 샌더스는 연방 상원뿐 아니라 미국 정치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진보파로 꼽히는 인사다. 1941년생인 둘은 83세 동갑이다.
계기는 체니 전 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선언이다. 그는 6일 성명을 통해 “우리 모두는 시민으로서 헌법 수호를 위해 당파보다 국가를 우선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11월 대선 때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4일 부친보다 먼저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한 체니 전 의원은 8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권력 탈취 시도를 위해 폭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을 위인”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묘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하자 이에 불복해 극렬 지지자를 선동하고 선거 결과를 전복하려 한 혐의로 지난해 8월 기소됐다.
이에 샌더스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이 동의하는 체니 부녀의 의견이 거의 없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그들의 신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해리스 부통령이 최근 각종 정책 이슈에 대한 입장을 종전보다 오른쪽으로 바꾼 것에 대해서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 뿐 이상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에 마지막까지 남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쟁했던 당내 ‘비(非)트럼프’ 대표 주자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반(反)트럼프’ 체니 부녀와 다른 길을 골랐다. 그는 이날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아직 (도와 달라는) 트럼프 측 요청은 없었지만 그가 물어본다면 기쁘게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좋은 후보라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트럼프와 해리스 사이의 선택은 쉬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