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전 일본 총리 "자민당 새 총재, 고이즈미 지지"... 멀어지는 '당 혁신'

입력
2024.09.09 18:00
유세장 함께 등장해 '고이즈미 지원' 공식화
'당내 비주류'서 킹메이커?... '실세' 될 수도
"새 계파 등장… 쟁탈전에 국민은 실망" 비판

일본 집권 자민당 내 비주류인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가 오는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지율 선두인 고이즈미 신지로 전 일본 환경장관을 공개 지지하며 세몰이에 나선 것이다. 고이즈미 전 장관이 새 총재가 될 경우, 비주류 신세에서 벗어나 과거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스가 전 총리는 전날 고이즈미 전 장관의 요코하마 거리 유세에 함께 등장해 "이번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에게) 일본의 조타수 역할을 맡기고 싶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전 장관 지지 의사를 공식화한 셈이다.

스가 전 총리가 특정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총재 선거에 출마한 인사들 중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고이즈미 전 장관과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을 물밑에서 돕기만 했는데, 이번 발언을 통해 '고이즈미 지원'으로 자신의 입장을 못 박은 것이다.

고이즈미 전 장관은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차기 총재 후보다. 일본 JNN(TBS방송)이 지난 7, 8일 성인 1,011명을 대상으로 차기 총리 후보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그가 28.5%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23.1%로 소폭 뒤지며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자민당 지지층'으로 좁히면, 고이즈미 전 장관(34.5%)이 이시바 전 간사장(24.1%)을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고이즈미 전 장관이 자민당 차기 총재, 즉 일본의 새 총리가 될 경우 스가 전 총리가 실세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환경장관 이외에는 정권 운영이나 당무에 참여한 적이 없는 고이즈미 전 장관의 최대 단점, 곧 '경험 부족'을 스가 전 총리가 보완해 주는 전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NNN(니혼TV)은 "(고이즈미의) 후견인이 바로 스가"라며 "스가가 국회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고이즈미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스가 전 총리나 아소 다로 전 총리 등 전직 총리들이 이번 선거를 주도하는 탓에 '당 혁신' 작업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이른바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에 대응하겠다며 계파 해체를 선언했음에도, 아소 전 총리는 '아소파 소속' 고노 다로 디지털장관, '옛 아베파' 소속 의원 상당수가 밀고 있는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장관을 지원하고 있다.

총재 선거 출마를 검토 중인 노다 세이코 전 총무장관은 지난 6일 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새로운 계파가 등장해 (출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민당의 한 원로 정치인은 지지통신에 "(일본) 국민이 계파 쟁탈전을 보면서 '자민당은 바뀌지 않았다'며 실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