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1945년 광복 직후 부산으로 항해 중 침몰한 우키시마마루호의 한국인 탑승자 명단 중 일부를 확보했다. 그동안 “자료가 없다”고 버티던 일본 후생노동성은 79년 만에 관련 자료 75건 중 승선 조선인 명부와 조난자 명부 등 19건을 전달했다. 당시 한국인이 얼마나 타고 있었고 배는 왜 갑자기 가라앉게 됐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한을 풀 단초가 마련됐다. 정부는 강제로 끌려갔다 꿈에 부푼 고향길에 올랐지만 80년 가까이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바다에 묻혀 있는 이들의 ‘완전한 귀국’을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우키시마마루호는 일본이 패전 후 징용 한국인을 송환하기 위해 띄운 귀국선이었다. 8월 22일 혼슈 북쪽 끝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해군항에서 출항한 4,730톤급 배엔 항만과 철도, 참호 건설 등에 강제 동원됐던 수천 명의 한국인이 올라 탔다. 이후 배는 당초 목적지인 부산으로 곧장 가지 않고 해안선을 항해 중 8월 24일 교토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침몰됐다. 일본은 이 사고로 3,735명의 탑승자 중 한국인 524명과 일본 해군 25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배’라는 소문에 실제 탑승자는 8,000명이 넘고 사망자도 최소 3,000명이라는 게 생존자와 유족들의 증언이다.
일본은 미군의 해저 기뢰를 건드린 게 사고 원인이란 입장이나 전쟁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오미나토해군공작부가 자폭을 감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9년 후 인양된 배의 철판이 안에서 밖으로 휘어져 있었다는 지적도 풀려야 할 의문이다. 모든 의혹은 그동안 자료 공개를 거부해온 일본이 초래한 측면이 큰 만큼 진실을 밝히는 데 적극 협조해야 마땅하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이달 말 퇴임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마지막 방한 직전 진전을 이룬 건 주목된다. 지도자가 바뀌어도 한일 협력은 지속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양국 모두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정상회담이 고별 인사가 아니라 우키시마마루호 진상규명 등 새 한일 관계의 출발이 되길 바란다. 내년은 한일기본조약 60주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