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갈댓잎 끝이 붉은 까닭

입력
2024.09.09 04:30
27면
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으악새 슬피 우는 사연’ 정도로 하찮게 치부할 순 없는 기막힌 일이 역사에는 자주 나온다. 만고의 충신 박제상의 이야기는 그 가운데 압권이다. 왕자를 구하려 적진에 들어갔다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저간의 사정이야 말해 구구하다. 그러나 일본 땅에서 목숨을 잃는 마지막 장면은 삼국유사가 전하는 가장 끔찍한 기록 가운데 하나다. "제상의 발바닥 거죽을 벗겨낸 뒤, 갈대를 잘라놓고 그 위로 걷게 했다." 자기 신하가 되기를 거절하는 박제상에게 가해진 왜왕(倭王)의 고문이었다.

삼국사기도 이에 못지않다. '장작불로 몸을 태워 문드러지게 한 뒤 칼로 베었다'는 대목이 그렇다. 물론 왜왕 입장에서야 화가 날 만했다. 거짓으로 투항해 와 자기 나라 왕자를 탈출시킨 후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미 자존심 상할 대로 상한 왜왕이 그나마 체면을 살리려 제상에게 전향을 권하지만, 제상은 '차라리 신라 땅 개 돼지가 될지언정' 달리 바라지 않는다고 일거에 내친다.

우리는 이 대목을 참말로 소중히 여긴다. 다만, 소중하지만 익히 아는 바라 흥미롭지 않다면 삼국유사의 짤막한 주석 하나에 눈길을 주기 바란다. 발바닥 거죽을 벗겨 갈대 위로 걷게 했다는 바로 그 글 밑에 일연은 '지금까지도 갈대 끝이 피처럼 빨간 것은 세상에서 이 제상의 피 때문이라 전하고 있다(今蕪葭上有血痕, 俗云堤上之血)'고 썼다. 가을이 오면 갈댓잎 끝부터 갈색으로 변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제상의 발바닥에서 흐른 피의 흔적이라고 보았다. 게다가 당대로 끝나지 않는다. 들판에서 갯가에서 자라나는, 나아가 대를 이어 '지금도' 손손(孫孫)의 갈대마다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갈대는 무엇일까. 폭압자의 손에 쥐어져 애꿎은 고문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그것이 한이 되어 억울한 사연을 청사에 남겨놓은 전달자이기도 하다. 제 나라가 뭐라고, 누구는 발바닥 거죽을 벗기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버리지 않고, 미물조차 감동하여 대대로 흔적을 남겨 증언하는 일이 값지지 않은가. 멀쩡히 살아있는 나라를 부정하고 남의 나라 백성 만드는 어떤 쉰 목소리가 애처롭다. 붉은 갈댓잎 끝 앞에 부끄럽다.

갈대를 말하자면 신경림 시인이다. 그의 데뷔작이 '갈대'였다.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갈대가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몰랐다고 가만히 부르는 노래. 피 어린 갈대와 시인의 절창이 왠지 하나로 다가오는 가을이다.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