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것 아닌데요"라고 한 SSD… 대법 "영장 없이 압수해 별건 수사 가능"

입력
2024.08.28 11:40
"권리 포기하면 참여권 보장 안 해도 돼"

강제수사 대상이 자신의 소유품이 아니라고 부인한 정보저장매체는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습득해 또 다른 범죄로 수사를 확대해도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당시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청소년성보호법상 음란물제작∙배포 혐의와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25일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7~2019년 22회에 걸쳐 10대 청소년을 포함한 9명의 피해자와 성관계하는 모습을 몰래 촬영하고, 이 중 일부를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제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여성 청소년과 2차례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한 혐의도 적용됐다.

"A씨가 여성의 신체 사진을 찍어 유포하는 것 같다"는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범죄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집행 과정에서 A씨는 집 밖으로 정보저장장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카드가 담긴 주머니를 던졌고, 경찰 추궁에 주머니와 SSD카드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SSD카드를 유류물로 확보한 경찰은 그 안에서 A씨가 불법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발견했다. A씨의 자택 등에서 압수한 개인용 컴퓨터(PC)에서도 유사 영상물이 다수 확인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성관계 불법 촬영과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을 주된 혐의로 적용해 A씨를 기소했다.

재판 쟁점은 당초 압수 대상이 아니었던 SSD카드를 그대로 습득해 이를 별건 혐의 파악에 활용한 수사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는지였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의 유류물은 별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지만, 이를 기존 영장 범위를 벗어난 범죄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지는 명확한 원칙이 확립되지 않았다.

1심은 SSD카드의 증거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자택에서 발견된 PC와 함께 SSD카드에서 나온 자료들은 기존 영장에 명시된 범죄 혐의에 해당하지 않는 것인데도 새 영장 없이 확보됐으므로 증거로 쓸 수 없다며 집행유예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경찰이 새로 영장을 받지 않고 임의로 압수한 PC 속 영상물에 대해선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그러나 SSD카드에 대해선 A씨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으므로 참여권 행사를 보장할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됐다는 이유를 들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정보저장매체를 소지하던 사람이 그에 관한 권리를 포기했거나 포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이를 영장 없이 압수할 때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압수의 대상이나 범위가 한정되거나 당사자 참여가 필수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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