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통제로 문 닫았던 중국 '진보 서점', 6년 만에 워싱턴서 부활

입력
2024.08.26 14:48
상하이 지펑서원, 내달 'JF북스'로 새 출발
소유주 "미국서도 학술 교류 전통 잇겠다"

중국 정부의 이념 통제로 문을 닫았던 중국의 대표적 진보 서점 '지펑서원'이 폐점 6년 만에 미국에서 부활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990년대 후반~2010년대 후반 중국 진보 지식인들을 위한 자유로운 학문 토론의 장이었던 상하이 지펑서원이 다음 달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새로 문을 연다고 26일 보도했다. 개설되는 서점의 이름은 'JF(지펑)북스'다.

지펑서원 소유주였던 위먀오는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위챗을 통해 "우리는 6년 만에 새로운 나라에서 다시 시작한다"며 "워싱턴에 세계 유일의 지펑서원 매장을 여는 데 온 마음을 바쳤다"고 밝혔다. 이 게시물은 지펑서원을 기억하는 중국 지식인은 물론 전 세계 도서 애호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공유됐다. 한 위챗 이용자는 "상하이의 그 어떤 서점도 (워싱턴의) 지펑서원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댓글을 달며 지펑서원의 부활을 반겼다.

지펑서원은 상하이 사회과학원에서 정치사상사를 공부한 옌보페이가 1997년 설립했다. 공산주의 사상을 벗어나는 정치·철학 서적을 다양하게 선보였을 뿐 아니라, 사회과학 분야 진보 성향 지식인들의 강연· 토론을 개최해 상하이 학문 교류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한때 상하이 전역에 8개 지점을 열 정도로 번창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1월 상하이도서관 지하철 지점 폐점을 끝으로 모두 문을 닫았다. 중국 당국이 임대 계약을 해 주지 않거나, 이전할 공간을 내 주지 않는 등 사실상 폐점 압박을 가한 탓이었다. 당시 상하이의 학자 장쉐중은 "더 자유로운 문화적 행사보다 정치적 안정만을 추구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이념 통제 조치를 비판했다.

워싱턴에 들어설 JF북스는 홍콩·대만에서 출판된 인문·사회과학 서적,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문제를 다룬 영문 서적 등을 판매할 예정이다. 상당수는 검열 때문에 중국 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들이다. 위먀오는 "상하이에서 문을 닫기 전 5년간 지펑서원은 500회 이상의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며 "이런 전통은 워싱턴에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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