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작은 친구였어요?”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서 만난 백구 한 마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작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아지 ‘살자’를 소개해 준 활동가도 “봉사차 방문하신 분들도 처음 보면 깜짝 놀란다”며 “실제로 보면 정말 작은 강아지”라고 답했습니다.
사람이 먼저 다가가자 살자는 두려운 듯 구석에 잔뜩 웅크려 몸을 떨기까지 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뒤로 물러난 뒤 발코니로 나갈 문을 열어주자 잠시 망설이다 후다닥 발코니로 나갔습니다. 넓은 발코니에서 살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 뒤 간식을 통해 유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살자는 간식을 주려고 해도 뒷걸음질만 쳤고, 보다 못해 던져준 간식은 먹은 뒤 잽싸게 제자리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살자를 구조할 당시 송 팀장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2년 전의 기억을 꺼냈습니다.
지난 2022년 7월의 어느 날. 경기 수원시의 한 야산에서 송 팀장은 2주째 팀원들과 번갈아가며 이곳에서 잠복 중이었습니다. 그들이 주시하고 있는 곳은 한 비닐하우스. 이곳에서 개 도살이 간헐적이지만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을 덮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지루한 잠복이 계속되던 순간, 송 팀장이 주시하던 화면에 뭔가 움직임이 감지됐습니다. 동물을 구조할 때 사용하던 야간 무선 카메라에 도살자가 개를 데리고 사육장에서 도살장으로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잡힌 겁니다. 송 팀장은 그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불법 도살장 인근에서 경찰을 기다렸습니다.
제때 도착한 경찰 덕분에 현장 적발까지는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팀원들이 마주한 상황은 ‘익숙한 참혹’ 그 자체였습니다. 개가 도살되는 모습은 수차례 목격했지만, 적응이 될 리는 만무했습니다. 목이 공중에 매달린 채 숨이 끊어진 개, 이미 불에 검게 그을려버린 또 다른 개의 사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더군다나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을 살아 있는 개 두 마리도 발견됐습니다.
다행히 적발 직후 도살자는 크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도살 목적으로 개들을 사육하고 있는 또 다른 장소를 말하라는 구조팀의 요청에도 순순히 응했고, 소유권 포기에도 동의했습니다. 오래 기다린 끝에 벌어진 구조 작업은 순조로웠습니다. 단 한 마리, 살자를 구조하는 일을 제외하고 말이죠.
물론 억지로 철장에서 빼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살자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구조팀의 배려였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살자는 동물자유연대의 보호를 받게 됐습니다.
이 사건은 동그람이가 한차례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도살자가 벌금형 약식명령을 받으며 사건이 종결된 까닭이었습니다. 정식 재판 없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데 동물자유연대는 크게 반발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의 미진한 수사도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약식명령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송 팀장은 “물론 도살자가 고령이고 반성의 기미가 보였던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그런 반성도 정식 법정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명확히 분류해 판결로 남겼어야 죽은 생명들도 덜 억울하지 않을까 쉽다”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온센터에 도착한 직후 살자의 생활은, 지금보다도 더 심각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같이 구조된 친구들 뒤에 숨어 몸을 구석에 파묻으며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나아진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동물자유연대 이민주 활동가는 “그나마 다른 개들과의 유대감 형성은 어느 정도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함께 지내는 룸메이트 ‘누리’와의 관계도 원활해 보였습니다. 누리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지 간식을 잘 받아먹었습니다. 던져준 간식 역시 상당수는 누리의 몫이었습니다. 살자의 소심함 덕분(?)에 둘 사이의 분쟁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심함이 늘 장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송 팀장이 우려했던 게 현실이 된 겁니다. 수원 도살장 구조견들은 모두 해외와 국내 각지의 가정으로 떠났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살자는 여전히 사람을 향해 마음을 내밀기 어려운 듯해 보였습니다.
다행히 지금 살자는 목줄을 차고 산책을 하는 것까지는 가능합니다. 다만 겁이 많은 까닭에 작은 자극에도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려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자가 입양이든 임보든 보호소가 아닌 가정을 경험해 보는 게 이 활동가의 소망이라고 합니다.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가정임보 혹은 입양.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살자에 대한 문의는 한차례도 없었다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앞으로 더 남은 나날을 살아가자는 희망적인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었지만, 그 삶은 사람이 곁에 있어야 더 아름답게 채워질 겁니다. 언젠가 다가올지 모를 살자의 새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