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큐 조(고마워요 조).”
19일 밤(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州)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의 2만3,500여 객석을 꽉 채운 민주당원들은 연호로 2024년 미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첫날 마지막 연설 무대에 오른 조 바이든 대통령을 울렸다. “위 러브 조(우리는 조를 사랑해)”가 적힌 팻말을 든 참석자들의 환호에 바이든 대통령은 약 4분간 연설을 시작하지 못했다. 자신을 소개한 딸 애슐리를 껴안고는 티슈로 눈물을 닦았다. 감사와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당원들에게 화답했다.
연설은 길었다. 50분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이날 조연이었다. 원래 전대 마지막 날 마지막 무대를 대선 후보 수락 연설로 장식할 예정이었지만, 두 달쯤 전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 토론 참패가 운명을 바꿨다. 민주당 내 거의 모두가 그의 재선 도전 자격과 경쟁력을 의심했다. 그는 버티다 지난달 21일 사퇴 결단을 내렸다. 공화당 전대 폐막 직후였고 코로나19 감염으로 격리된 처지였다. 그의 지지를 업고 별 잡음 없이 후보 자리를 승계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승승장구했다. 패색이 짙던 민주당도 활기를 찾았고 더 결집했다.
사퇴 뒤 그가 가장 많이 들었을 법한 찬사가 애국자였다. 그는 청중에게 물었다. “자유를 위해, 미국 민주주의를 위해, 해리스와 월즈(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위해 투표할 준비가 됐나.” 나치즘과 백인우월주의, 반(反)유대주의를 막기 위해 대통령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를 회고하더니 업적을 살뜰히 자랑하기도 했다.
퇴임은 내년 1월이다. 하지만 바이든의 52년 정치 인생과 사실상 작별하는 날은 이날이었다. “미국이여, 나는 그대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당부도 비장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상원을 수성하고 하원을 탈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럼프를 이겨야 한다. 역사와 미국의 미래가 당신들 손에 달렸다.” 평소보다 에너지가 넘쳤던 이날 연설은 밤 11시 18분에야 끝났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깜짝’ 등장해 일정에 없던 무대를 소화했다. 유세 등장곡인 비욘세의 ‘프리덤(자유)’과 함께 등장해 구호인 “우리가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를 외쳤고, “우리의 엄청난 조 바이든을 기리며 행사를 시작하고 싶다. 우리는 당신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사에는 2016년 먼저 미국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포함됐다. 그는 “우리는 함께 가장 높고 단단한 마지막 천장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 유리천장 너머에서 해리스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선서에 나설 것”이라며 “나아가 승리하자”고 독려했다. 당내 진보 소장파 대표 격인 차세대 스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뉴욕)도 연사로 나섰다.
행사장 안팎에는 덕담이 넘쳤고 기대감이 흘렀다. 미국 진보파의 상징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미국 CNN방송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함께 주최한 대담에서 “해리스는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후보이자 소득과 부(富)의 불평등을 다루는 세제 개혁을 관철할 대통령감”이라고 칭찬했다.
개성 강한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들로 국가대표팀을 꾸려 최근 프랑스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NBA 시카고 불스 출신 스티브 커 감독도 나섰다. 그는 불스 홈코트인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이어간 찬조 연설에서 “파리에서 12명의 미국인이 이룬 성취를 생각해 보라”며 “3억3,000만 명이 같은 팀에서 뛰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이제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이날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특징은 장내 결집과 장외 분열이었다. 대회 행사장인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유니언공원에서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지 말고 가자 전쟁 휴전 중재를 서두르라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 및 행진이 정오부터 이어졌다.
집회 현장의 목소리는 성토였다. 양당 중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에 기대를 걸었던 참가자들은 배신감을 토로했다. 시민단체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소속 활동가인 자이납 압둘라(32)는 “4년 전 차악을 고르자는 생각으로 바이든에게 투표했는데, 그 결과가 지금 가자의 수많은 죽음”이라며 “책임감을 느낀다”고 자책했다.
미시간주 남부 도시 캘러머주에서 온 대니얼 스미스(71)는 “매일 휴대폰을 통해 잔해에 묻힌 아이들의 이미지를 본다. 그 짓에 돈을 대는 나라의 납세자로서 여기에 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미시간은 무슬림과 아랍계 유권자 비중이 크고 접전이 펼쳐지는 중서부 경합주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주로 분류된다.
다만 이날 큰 충돌은 없었다. 참가자가 최소 2만 명이 되리라던 주최 측 ‘DNC(민주당 전당대회)로의 행진’의 예상은 빗나갔다. 수천 명으로 추산되는 시위대는 오후 3시쯤 시카고시가 허가한 구간을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킬러 카멀라”,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조”처럼 구호는 과격했지만 대부분 경찰 통제를 따랐다고 지역 매체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