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 10일 시작한 JTBC의 새 주말드라마 ‘가족X멜로’의 주인공은 배우 김지수(51)와 지진희(53)다. 각각 데뷔 32년차, 25년차 배우가 가장 경쟁이 치열한 주말 드라마를 맡게 된 것. 이 드라마는 이혼한 부부로 나오는 두 배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 12일 첫 방송된 ENA의 스릴러 드라마 ‘유어 아너’의 주인공 역시 베테랑 배우 손현주(59)와 김명민(51). 각각 살인범의 아버지, 살인 피해자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두 배우의 부성애가 드라마의 가장 큰 줄기다.
#. 14일 시작한 KBS의 새 수목 드라마 ‘완벽한 가족’도 중견 배우 김병철(50)과 윤세아(46)가 주연을 맡았다. 한 가족이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 드라마에서 두 배우는 부부로 나와 극을 이끈다.
이틀 간격으로 새로 시작한 세 드라마의 주인공 배우 여섯 명의 평균 나이는 51.6세. 청춘들의 이야기가 소멸하고 4050세대의 목소리만 가득한 드라마 속 풍경은 급속히 고령화하는 한국 사회와 똑닮았다. 한국은 지난달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해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뒀다. 드라마도 이런 한국 사회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드라마의 변화는 인구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중위 연령(전체 인구를 나이 순으로 정렬했을 때 정중앙에 있는 연령)은 45.7세. 1980년 21세였던 한국의 중위 연령이 두 배 넘게 뛴 것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50대를 ‘많은 나이’로 보지 않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이런 경향이 드라마 제작에도 영향을 줘 20~30년 전부터 활동하던 배우들이 계속 드라마에서 주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공개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의 주인공 역시 염정아·조진웅('노 웨이 아웃 : 더 풀렛'), 김희애·설경구('돌풍'), 김하늘·비('화인가 스캔들') 등 4050세대 중견배우들이 대부분이다.
청춘 드라마는 멸종 상태다. 청춘 배우들이 자기 세대의 목소리를 내는 드라마는 보기 힘들다. 올해 상반기 시청률과 화제성이 높았던 드라마들도 '청춘'과 거리가 멀었다. 이혼한 부부가 다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눈물의 여왕’,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대한 복수를 담은 ‘내 남편과 결혼해줘’처럼 연인이 아닌 부부의 갈등과 이혼이 주를 이룬다. ‘선재 업고 튀어’에는 청춘 로맨스가 있지만, 304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큰 틀 안에 10대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는 구조다.
최근 몇 년간 방송된 청년 소재 드라마는 '반짝이는 워터멜론'(2023)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그 해 우리는'(2021) 정도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청춘 드라마가 멸종하면서 청춘들의 이야기는 3040세대 드라마 안으로 수렴됐다”며 “방송 콘텐츠는 3040세대가 주도하고, 1020세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웹 드라마 등을 주도한다”고 말했다. TV보다는 유튜브 등 웹에서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20대는 드라마를 상대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20대의 인구 규모가 작아지고 취업난 장기화로 사회적 입지가 좁아진 것도 드라마 속 젊은 세대의 존재감을 약화시켰다.
드라마 시장 위축도 이런 현상을 가속화한다. 제작사·방송사들이 드라마 주 시청층인 3040세대가 주인공인 작품을 주로 기획하고, 신인 배우보다 실력과 화제성이 검증된 중견 배우에게 큰 역할을 맡기는 '안전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를 통해 신인 배우가 탄생하던 공식이 깨지고 있다. 아이돌 출신들의 연기 도전은 계속되고 있지만 성공률은 높지 않다. 김헌식 평론가는 “과거부터 활동하던 배우만 캐스팅하다 보니 새로운 배우 세대의 유입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구 세대를 아우르는 드라마로 배우 캐스팅과 시청층의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