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더위가 가신다’는 처서(22일)가 코앞인데도 살인적인 무더위가 가시지 않고 있다. 어제 기준 서울은 28일째, 부산은 24일째, 그리고 제주는 34일째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가 이어졌다. 모두 118년 기상관측 사상 최장 기록이다.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가축과 어류가 대량 폐사하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불어나고 있다. 뉴노멀이 된 이런 기후변화에 우리가 충분히 대비돼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올여름 무더위 특징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기 중 다량의 수증기가 온실효과를 일으키면서 낮 열기가 밤에도 식지 않는다. 폭염 일수는 아직 역대 최악의 여름이라는 2018년에 못 미치지만 열대야 기록이 이를 훌쩍 넘어선 건 그래서다. 더위가 하루 24시간 내내 이어지니 고통이 더 클 것이다.
폭염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쪽방촌이나 반지하 거주민들은 푹푹 찌는 열대야에도 에어컨이 없어서 혹은 전기요금이 부담돼서 선풍기 한 대로 근근이 버티는 경우가 허다하다. 야외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나 택배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폭염과 뙤약볕에 맞서야 한다. 그제까지 온열질환자는 사망자 23명을 포함해 2,704명으로 지난해보다 13.8% 늘었다. 이들 상당수가 사회적 약자일 것이다. 어제도 충남 예산에서 40대 외국인이 밭일을 하다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이런 기록적인 더위에 수천 명이 참가하는 야간 달리기 대회를 강행해 수십 명이 탈진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폭염이라는 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일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상청은 연내 발간을 목표로 폭염백서 작성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백서는 기초자료일 뿐이다. 일상이 된 극한 폭염에 대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권고사항에 불과한 옥외 노동자 작업중지권 의무화를 적극 검토하고, 에어컨 구매 지원 등으로 취약계층의 ‘여름 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전력 수요를 따라갈 수 있도록 전력 생산과 송전망 해법을 서둘러야 함은 물론이다. 예고된 재난에 대한 더딘 대응은 인재(人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