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두 개 달린 중국산 검은 물체, 우리 해변 쑥대밭으로 만들다

입력
2024.08.19 04:00
1면
<추적 : 지옥이 된 바다 2부> 
① 국경 없는 표류
중국 다롄·한국 서해안 동시 취재 실태 확인
범인=축구장 1만개 크기 다시마 양식장 부표
해외서 흘러온 해양 쓰레기의 98%는 중국발 
어선이 불법조업 중 버리고 양쯔강 쓰레기도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배 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깡마른 늙은 중국 어부가 끄는 낡은 보트를 얻어 타고 1~2분쯤 달렸을까. 분명히 물 위에 떠 있는데, 마치 지뢰밭에 들어선 것 같았다. 1m 간격으로 종대 지어 도열한 폭탄 모양의 검은 물체들이 눈앞에 나타난 탓이다. 농구공보다 조금 더 큰 모양(지름 약 30㎝)으로 어림잡아도 최소 수십만 개가 바다에 깔려 있었다. 7월 5일 오전 10시쯤, 중국 랴오닝반도 끝자락의 항구 도시 다롄 앞바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뭐라도 잘못 집어삼킨 듯 ‘크렁크렁’거리는 목조 선박의 모터 소음이 귀를 자극하자 묘한 공포심마저 들었다. 배를 태워준 어부 쑹모(73)가 선한 인상으로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저게 부자(부표)예요. 귀 모양의 고리가 두 개 달렸다고 해서 쌍귀 부자(双耳浮子). 양식용 밧줄을 띄워 놓는 용도로 써요.”

부표에 묶인 밧줄을 들어 올리니 흑갈색 해조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마였다. 기자가 찾은 다롄의 뤼순커우구 롱황탕 마을 사람들은 다시마 덕에 먹고산다. 뤼순커우구는 중국 내 다시마 주산지다. 우리로 치면 완도 전복, 기장 미역처럼 좋은 품질 덕에 지역명이 브랜드가 됐다. 쑹은 “롱황탕 마을의 다시마 양식장 면적은 72㎢에 달한다”고 자랑했다. 축구장 1만 개가 바다에 떠 있는 셈이다. 수확철인 5~7월에는 어촌 사람들이 부쩍 바빠진다. 현장을 둘러본 그날도 작은 나무배를 탄 어민들이 기다란 갈고리로 양식장에서 연신 다시마를 건져 올렸다.

엄청난 양의 다시마를 키우려면 그만큼 부표가 많이 필요하다. 다시마는 광합성을 잘해야 잘 자라는 까닭에 볕이 드는 수면 가까이에 잠겨 있어야 한다. 밧줄을 부표에 묶어 바다에 띄워 놓은 뒤 여기에 다시마를 매달아 놓는 이유다. 롱황탕 바로 옆 궈자거우촌에서 부표 수거 사업을 하는 리모(45)씨는 “궈자거우촌 해역에만 매년 약 10만 개의 새 부표가 뿌려진다. 다롄 전체로 따지면 아마 수십만 개의 부표가 새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적지 않은 부표가 먼바다로 떠내려간다는 점이다. 다시마를 수확할 때 부표 줄을 끊어내는데, 부주의하면 부표가 유실된다. 어부들이 애초에 이 검은 어구를 밧줄에 대충 묶어놔서 없어지는 일도 있다. 부표를 손질하거나 재활용하려고 수거하는 과정에서도 제법 많이 유실된다.

어민들은 다롄에서만 매년 부표 수천 개가 유실되는 것으로 봤다. 다시마 양식이 활발한 랴오닝성이나 보하이만(발해만)을 사이에 둔 산둥성 전체에서 사라지는 부표를 더하면 수만에서 수십만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누구도 정확한 양을 알지 못하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표가 없어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라진 부표는 어디로 갔을까. 어부 쑹에게 물으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그건 모르지. 뭐, 바다를 따라 떠내려가니 어디 멀리로 가지 않았을까요?”

제주에서 백령도까지…중국 쓰레기, 없는 곳이 없다

“이건 한국에서 버린 게 아니에요. 여기 좀 봐요, 검은 데다 귀가 두 개 달렸잖아. 우리 건 하얗고 귀가 하나라고.”

7월 4일 충남 서천군 장포리 해변. 땡볕 아래서 쓰레기를 줍던 윤여철(67)씨가 검은 부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부표는 폐어구와 생활 폐기물, 초목류 등 다른 쓰레기와 뒤엉켜 해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4년째 공공근로를 하며 해안 쓰레기를 목격해 온 윤씨는 쌍귀 부표가 중국산이라고 확신했다. 모양은 물론 무게(2.2㎏)까지도 다롄 앞바다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다. 중국어가 선명히 적혀 있는 부표도 많았다. 윤씨는 “3년 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검은 부표를 하루 3, 4개 정도 치웠는데 요즘은 하루 20~30개쯤 본다”며 “썰물 때 싹 치워도 밀물 때 또 흘러오니 ‘왜 안 치웠냐’는 항의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는 이날 2시간 정도 윤씨와 동료들을 따라다니며 500m 길이 해변에서 쌍귀 부표를 10개 넘게 주웠다. 중국 어민 쑹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던 그 부표들은 다롄에서 400~700㎞ 떨어진 서천, 제주, 전남 목포, 인천 백령도 등 우리 서해안 곳곳에서 발견됐다.

부표처럼 바다 쓰레기들은 국경 없이 표류한다. 이 점에서 미세먼지와 비슷하다. 중국 공장과 자동차 등이 내뿜은 초미세먼지가 편서풍에 실려 우리나라로 날아와 대기를 오염시키듯, 해류를 타고 흘러들어온 해외 해양 쓰레기는 우리 바다와 해안을 더럽힌다. 동해와 서해, 남해의 해안에서 발견된 쓰레기 중 해외에서 떠내려온 비율은 약 8%(무게 기준)지만, 우리 해역에 가라앉아 있는 외국 쓰레기의 양은 가늠조차 못 하고 있다.

'주범'은 중국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해안가에서 발견된 외국발 쓰레기의 98%가 이 나라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거의 모든 외국 쓰레기가 중국산이라는 얘기다.

추적 장치 끈 중국 어선들, 우리 바다에 쓰레기 투기

중국 쓰레기를 바다에 버린 범인은 누굴까. 가장 많은 양을 투기한 건 ①중국 어민들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해역에서 발견되는 중국 쓰레기는 대부분 어선들이 버린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한중 간 해양 국경을 마주한 서해와 동중국해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버린다. 제주 먼바다에서 트롤(저인망) 어선을 모는 곽운영(63) 선장이 증언했다.

매년 10월이 지나 날씨가 선선해지면 중국 배들이 우리 접경까지 어마어마하게 와서 조업하거든. 안강망 어선 등 일부는 우리 해역을 넘어와 몰래 고기 잡다가 도망친다니까. 이 배들이 엄청나게 버린다고 봐.

중국 어선들이 한국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면 그 피해는 온전히 우리 어민들이 본다. 해저에 가라앉은 폐그물·통발에 물고기가 갇혀 죽고 어장까지 망가뜨리는 '유령 어업'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연근해나 해안에 쌓인 중국 쓰레기를 수거·처리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야 하는 데다 중국 부표는 매우 단단해 잘게 부셔 소각하는 일도 쉽지 않다.

우리 해역으로 넘어오는 중국 배들은 한 해 얼마나 될까. 본보가 해상 어선을 감시하는 비영리단체 '글로벌 피싱 워치'의 데이터를 직접 분석한 결과,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조금이라도 넘어온 중국 국적 어선은 9,459척이었다. 특히, 가을과 겨울(9월부터 이듬해 2월) 넘어온 비율이 70%에 달했다. 이 가운데 1,200척만 우리 정부의 허가를 받아 들어온 어선이고 나머지는 불법 조업한 배들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우리 해경 단속선은 바람이나 파도가 거세면 피항할 수밖에 없다"며 "이때를 틈타 넘어오는 중국 어선이 많다"고 털어놨다. 중국 고깃배 중에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우리 바다에서 '도둑 조업' 하는 배들이 많아 잡아내기가 더 어렵다.


불법 어획에 쓰레기까지 마구 버리고 가니 우리 어민들 입장에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제주 신산리 어촌계장인 한철남(62)씨는 "중국 어선들이 배에서 쓰다가 고장 난 냉장고까지 버린다"고 혀를 내둘렀다.

양쯔강이 '쓰레기 전달책', 서해에서 발견된 핏빛 주사 바늘

두 번째 범인은 ②중국의 평범한 시민들이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양쯔강(6,300㎞)이 '전달책' 역할을 한다. 이 강은 중국 서부의 티베트고원에서 물줄기가 시작돼 충칭(인구 3,000만 명), 우한(1,100만 명), 난징(900만 명), 상하이(2,400만 명) 등 대도시와 농촌 지역을 거쳐 상하이 삼각주(강 하구 퇴적 지형)를 통해 동중국해와 황해(서해)로 빠져나간다. 내륙을 흐를 때 강변에 버려졌거나 집중호우 때 강으로 쓸려 내려온 온갖 쓰레기를 싣고 와서 바다에 토해 낸다. 양쯔강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의 모든 하천 중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바다로 가장 많이 배출하는 강으로 악명 높았다.

양쯔강이 내다 버린 육상 폐기물들은 우리나라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이 쓰레기들이 어떻게 한국으로 흘러오는지 정확한 이동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한반도와 중국 사이를 뺑뺑 도는 해류나 바람을 타고 쓰레기가 움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경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양쯔강 쓰레기는 보통 남쪽으로 향하는 해류를 타고 제주로 많이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겨울에 부는 북서풍도 중국 쓰레기를 배달한다. 이 바람은 중국 대륙에서 우리나라 방향으로 분다. 이 때문에 중국 동부 연근해 쓰레기를 더 동쪽으로 밀어내 한반도 남단인 신안부터 최북단인 백령도까지 서해안 곳곳으로 퍼뜨린다. 칭다오 등 우리와 서해를 사이에 둔 중국 지역의 쓰레기들도 북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중국 쓰레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해안에선 주로 물에 뜨는 생활 쓰레기가 목격된다. 일회용 플라스틱병과 각종 비닐 포장재가 대표적이다. 해양 쓰레기 전문가인 홍선욱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대표는 "서해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서 중국 약병과 핏자국이 선명한 주사 바늘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피서객이 이를 밟았다면 아찔한 상황이 발생할 뻔했다는 것이다.

양쯔강 청소 나선 중국…한국으로 떠내려 간 쓰레기엔 '무관심'

그나마 다행인 건 중국이 쓰레기로 오염된 양쯔강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6년 양쯔강 생태 복원을 선언한 뒤 중국 당국은 대대적인 청소·정비 작업을 벌였다. 또, 중국생태환경부는 2022년 양쯔강 보호·복원 심화 계획을 내놨는데 플라스틱 쓰레기 불법 투기를 엄격히 조사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중국인이 버린 쓰레기 탓에 한국 어민 등이 당하는 피해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해수부 관계자는 "중국 측과 대화 채널을 만들어 해양 쓰레기 해법 등을 찾아보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적극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중국 선박 등이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하려면 실태 파악이 우선인데, 이는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알기 어렵다.

해양 쓰레기의 피해국이 된 우리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려보면 우리도 이웃국 일본에 적지 않은 민폐를 끼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파란 통'(아래 연관 기사 참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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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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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조영빈 특파원
서천= 진달래 기자
유대근 기자
한채연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