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3만 명쯤 되는 일본의 작은 섬 쓰시마의 주민 치고 '파란 통'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이누즈카 유카리(59)의 일상에는 이 통이 깊숙이 자리 잡았다. 지난달 11일, 기자가 그가 운영하는 일식당을 찾았을 때도 이누즈카는 그럴싸한 바구니로 변신한 파란 통을 들어 보이며 뽐냈다. 이누즈카는 파란 통의 업사이클(폐기물를 이용해 더 높은 가치의 제품을 만드는 것)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잘 아는 분께서 주셨어요. 쓰시마 해변에서 흔히 주울 수 있는 파란 통의 윗부분을 잘라내고 고무 호스로 손잡이를 달았죠. 여기에 노란색 밧줄을 묶으니 마치 리본을 단 것 같아요. 쓸 만해 보이죠?"
이누즈카는 재활용한 이 바구니를 무척 유용하게 쓴다. 텃밭 가꿀 때 물통으로 쓰거나 수확한 농산물을 담아 옮길 때도 사용한다. 한참 설명을 듣던 기자는 파란 바구니를 들여다보다가 선명하게 적힌 한글을 발견했다.
'주식회사 XX 케미칼'.
이누즈카가 선물처럼 말하던 이 물건은 사실 한국발 쓰레기였던 것이다.
쓰시마 해변에는 파란 통이 엄청나게 많다. 이 지역 시민단체인 '카파'(CAPPA) 회원들이 지난해 수거한 것만 해도 1만 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는 다른 액체를 담았던 통도 있지만 유해성 화학물질인 염산이 담겼던 통도 적지 않은 것으로 쓰시마 사람들은 보고 있다. 스에나가 미치나오(53) 카파 이사는 "한국산 파란 통이 적어도 매년 4만 개씩 이 섬으로 흘러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란 통의 침입은 벌써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쓰시마시 환경정책과장인 아비루 마사오미(57)도 같은 궁금증을 오래 품었다. 그가 근무하는 쓰시마시와 시민단체, 어민들은 의문을 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았다. 아비루는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결정적 힌트 하나를 시청사로 찾아온 기자에게 내밀었다. 한국 언론사가 쓴 기사였다. 파란 염산통이 수북이 쌓인 사진도 실려 있었다. 기사에는 '한국 김 양식업자들이 공업용 염산을 수십 년간 불법 사용해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염산통의 비밀을 쫓으려면 3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4년, 한국 정부는 공업용 염산(무기산)을 유해화학물질로 규정해 김 양식 때 쓰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적지 않은 양식업자들이 금속을 세척하고 남은 폐염산을 물에 타 잡태(양식용 밧줄에 붙어 김 성장을 방해하는 해조류들)를 제거할 목적으로 사용했다. 육지로 치면 제초제로 쓴 셈이다. 염산은 해양 생물이 죽을 만큼 강한 산성 물질이다.
하지만 양식업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후에도 염산에 손을 댔다. 대체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공업용 염산보다 안전한 김 활성처리제가 있었다. 하지만 업자들은 "활성처리제를 써서는 잡태가 잘 사라지지 않는다"는 핑계를 들며 값싼 염산을 놓치 못했다. 일부 김 양식업자들의 일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공업용 염산 사용은 명백한 불법이다 보니 업자들은 증거를 인멸해야 했다. 다 쓴 염산통을 닥치는 대로 바다에 던졌다. 이 통이 해류를 타고 일본으로 떠내려왔다는 게 쓰시마 사람들이 파악한 '파란 통 비극'의 전말이다. 본보가 우리 해경과 양식장 사정에 밝은 학자 등에 진위를 물어 보니 대부분 "일본에서 발견된 건 한국 염산통이 맞을 것"이라고 답했다.
쓰시마에서 발견되는 한국 쓰레기에는 파란 통만 있는 게 아니다. 쓰시마는 서쪽과 남쪽 먼바다에서 떠내려온 외국발 쓰레기가 일본 본섬(혼슈)으로 흘러가는 걸 막아 준다. '쓰레기 방파제'로 불리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한국의 동·서·남해나 중국에서 떠내려온 각종 쓰레기가 이 섬 전역에서 쉽게 발견된다. 우에노 요시키(68) 카파 대표는 "한국에서 온 쓰레기가 가장 많았는데, 최근에는 중국 쓰레기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바닷가 쓰레기가 익숙하다. 쓰시마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토박이 주민 사카타 쇼코(44)가 증언했다.
"어렸을 때도 해변에 쓰레기는 많았죠. 그런데 최근 더 심해졌다는 걸 체감해요. 치워도 치워도 며칠 후에 보면 쓰레기가 다시 쌓여 있거든요."
사카타의 이야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쓰시마의 해변 쓰레기는 10년 전 2만~3만m³ 정도로 추산됐지만, 이제는 3만~4만m³까지 늘었다.
기자는 직접 쓰시마섬 해변 4곳(이쿠치하마·구지카하마·고모타하마·미우다하마)을 돌며 한국 쓰레기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수색했다. 우선 섬 북단의 이쿠치하마 해수욕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부산에서 만든 생막걸리 페트병이었다. 피서객이 마신 뒤 버렸거나 부산 연안에서 조업하는 어민이 바다에 던졌을 가능성이 있다. 부산 태종대에서 이 해수욕장까지 직선거리는 54㎞에 불과하다. 물에 잘 뜨는 플라스틱 병이 대한해협을 건너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총 4번씩 쓰시마 해안의 쓰레기 현황을 조사해 온 우에노가 기자에게 설명했다.
"페트병에 생산지 정보가 담긴 바코드나 글씨가 남아 있어서 원산지를 추적해 볼 수 있는 제품이 있거든요. 한국과 중국 제품이 각각 3분의 1씩이고 나머지는 일본 쓰레기이거나 국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이쿠치하마 외에 다른 해변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한국어가 적힌 플라스틱 음료병이나 맥주병 박스, 양식장에서 쓰는 사료 비닐 등이 쉽게 발견됐다. 우리 서해 어민들에게 골칫거리인 중국산 검정 부표(아래 연관 기사 참고)와 미국 하와이 몽크물범을 괴롭히는 장어 통발(아래 연관 기사 참고)도 많았다. 장어 통발은 일본산도 있었지만 한국산 제품도 적지 않았다. 쓰시마에서 장어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시마이 요시히데(46)는 "10~20년 전에는 일본 해역으로 넘어와 불법 조업하는 한국 장어잡이 배가 많았다"면서 "자위대가 출동하면 통발이 빼곡이 달린 줄을 끊고 도망쳤는데 그때 버려진 게 아직도 바다에 쌓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쓰시마 주민들은 해안 쓰레기만 보고도 한국과 중국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채는 경지에 이르렀다. 예컨대 고모타하마 해수욕장에는 한국어가 쓰인 미끼통이 최근 급격히 많이 발견되는데, 이를 보고 한국에서 낚시 인기가 높아졌음을 유추하는 식이다. 중국 경제의 변화도 쓰레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우에노는 "예전 중국산 음료병에는 붉은 바탕에 별이 많이 그려져 있는 등 사회주의 색채가 강했는데, 이제는 영어가 잔뜩 적힌 제품이 많다"면서 "기술 발전으로 페트병 재질도 얇아졌다"고 설명했다.
쓰시마 곳곳을 2박 3일(7월 11~13일) 동안 훑으며 쓰레기 취재를 하다가 '한국 기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는 늙은 어부를 만났다. 고미야 미쓰하루(77)였다. 지난 20년간 쓰시마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온 그는 쓰레기 탓에 망가진 바다를 걱정했다. 그러면서 "늘 궁금했다"며 기자에게 물었다.
"바다에 나가면 한국과 중국, 일본 쓰레기들을 매번 봅니다. 이 쓰레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늙은 어부의 질문은 해양 쓰레기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다. 동북아의 해양 쓰레기는 해류를 타고 돌고 도는 까닭에 일방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기자는 해양학자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한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 쓰레기도 미국 하와이 쪽으로 흘러가 태평양 해상에 '거대 쓰레기 지대(GPGP)'를 이룬다"고 답해줬다.
대답을 들은 고미야는 안타까워하며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쓰시마에서 한국 분들을 만나면 제가 서툰 한국어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요. 그러면 관광객들은 '공기가 맑아서 좋다'거나 '산이 많아 아름답다'며 치켜세워주죠. 하지만 '해안이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더럽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요."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