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傳]④ 그라운드의 이방인

입력
2024.08.15 07:00

1982년 봉황대기 고교야구 결승전은 그해 신축한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조계현이 버틴 군산상고를 상대로 한 선수가 역투를 펼치고 있었다. 경남고, 마산상고, 광주일고 등 강호들을 상대로 5경기 모두 완투승을 거뒀던 재일동포 양시철이었다.

이날 양시철은 6번째 경기를 완투했다. 봉황대기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양시철이 동점 3루타까지 치며 분전했지만, 재일동포팀은 군산상고에 1-4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1956년 한국일보와 대한야구협회는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모국방문경기대회를 개최했다. 고국의 요청에 재일동포사회는 일본 고교 팀에서 뛰고 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야구단을 꾸리고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매년 모금운동까지 벌였다. 어렵게 모은 쌈짓돈으로 모국을 방문한 재일동포 야구단은 선진 야구 기술과 야구 장비를 선물했다. 대회는 1968년 11회까지 이어지다가 1972년부터는 봉황대기 고교야구 참가로 모양새를 바꾸었고, 재일동포팀은 1974년 1982년 1984년 봉황대기에서 세 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고국 야구팬들의 반응은 항상 차가웠다. ‘쪽발이 같은 한국사람’이라고 냉대하기 일쑤였다. 일본에서도 힘겨웠던 어린 선수들은 또다른 차별에 마음의 문을 닫았다. 결국 선수 구하기가 어렵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재일동포팀 모국방문은 1997년을 이후 끝이 났다.

2013년 프로야구 정규시즌. 두산 베어스 시구자로 나선 이는 1982년 재일동포팀의 에이스 양시철이었다. 마음 속으로는 끝없이 노래를 되뇌었다. 재일동포팀이 승리할 때마다 교가 대신 불렀던 노래, ‘고향의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