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傳]① 박찬호 상대로 펑펑… 어떤 천재 타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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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07:00

1989년 8월 18일 동대문 야구장. 제19회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 16강전에서 휘문고와 공주고가 맞붙었다. 공주고 1학년 선발 박찬호의 구위가 좋았다. 당시로선 광속구라 불릴 만한 시속 140km 후반의 공을 포수 미트에 꽂으며 휘문고 타자들에게 무력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박찬호가 아니라 휘문고 4번 타자 박정혁이었다. 박정혁은 그날 박찬호로부터 무려 세 타석 연속해서 홈런을 뽑아냈다. 휘문고를 끌고 ‘하드캐리’한 박정혁은 광주진흥고와의 8강전 첫 타석에서도 대형 아치를 그리며 고교야구 사상 첫 4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당시 ‘고교 끝판왕’이라 불리던 위재영의 동산고였다. 휘문고는 위재영에게 무려 17개의 삼진을 당하며 우승의 문턱에서 패배의 눈물을 삼켰다. 결승전이 끝난 뒤 위재영은 MVP와 최우수투수상을, 대회기간 총 6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던 박정혁은 감투상 타점상 등을 휩쓸며 미래의 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1990년 고려대에 진학한 박정혁은 석연찮은 구타 사건에 휘말렸고 이후 부상 등으로 급격하게 페이스가 떨어졌다. 대학 졸업 후 LG트윈스에서 아주 잠깐의 프로생활을 거친 뒤 은퇴한 그는 스포츠에이전트로 활동하다 199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았던 생을 마감했다.

박정혁이 그렇게도 바랐던 우승의 꿈은 이정후 등 후배들의 활약으로 현실이 됐다. 휘문고는 2014년 첫 봉황대기를 들어올렸고, 2016년과 2019년까지 두 번 더 우승을 차지하며 야구 명문고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