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를 넘나드는 한여름, 장시간 야외 노동은 거칠게 말해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대략 매일 2만~3만 보를 걷고 한 달 약 4,000가구를 찾는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이 여름철만이라도 격월검침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지자체 규정에 하절기엔 격월검침이 가능하게 돼 있는데도, 왜 목숨 건 노동이 여전할까.
□ 지난달 17일 기후위기비상행동의 기자회견에 참여한 허보기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은 “하절기 격월검침은 폭염 시 야외에서 일하는 점검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그럼에도 도시가스회사들은 2020, 2021년 한 달 실시하더니 그조차 시행하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시 등의 도시가스 공급규정엔 6~9월 격월검침을 실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2022년 8월 자체 격월검침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20여 명의 서울도시가스 강북4·5고객센터 근로자들이 정직처분을 받았다.
□ 관련 지자체 규정이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라 구속력이 없기 때문인데,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관계자는 “도시가스 회사들과 한국가스공사가 협의하도록 요청했지만 가스공사 측이 부정적”이라고 답답해했다. 도매상인 가스공사가 소매상인 도시가스 회사에 파는 가스는 산업용, 주택용에 따라 금액이 다르기 때문에 매달 사용처를 점검해야 정확하다는 이유이다. 별도 구성비 정산기준을 만들어서 합의하면 되지만, 가스공사 관계자는 “도시가스 회사들이 먼저 방안을 만들어 와야 한다”며 뒷짐 지는 반응만 보였다. 서울시 측은 “폭염기간 격월검침은 필요하기 때문에 시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 이미 경기 지역은 도시가스 격월검침을 시행하고 있다. 지역 차별을 두지 않고 가스공사가 표준을 만들어서 전국 도시가스 회사들과 협의하고 적용하면 될 일이다. 공기업이 이 정도 책임감과 행정력도 없는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일하는 사무직들의 책임 미루기 행정에 현장직들의 건강이 위태롭다. 건설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현장 폭염 대책을 세우지 않은 원청 건설업체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곱씹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