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자국 영토 내에 러시아군을 남겨둔 채 적진 돌파를 택한 '러시아 쿠르스크 진격 작전'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과감하게 국경을 넘어 러시아 본토로 진입한 지 사흘 만에 서울시 면적(605㎢)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공격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아 '대대적 공세'라고 평가하긴 이르지만, 그동안 고전했던 전황을 흔들 만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서방 장갑차량이 우크라이나군과 함께 러시아 본토에 들어섰다는 점도 주목되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6일 북동부 전선을 넘어선 이래 사흘간 이어진 작전으로 장악한 도시는 총 11곳, 해당 지역의 면적 총합은 350㎢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무엘 라마니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은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여름 '대반격' 때보다 더 많은 영토를 총 48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점령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곳으로부터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까지는 약 530㎞, 차량 이동으로도 7~8시간 걸리는 거리라고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설명했다.
"적을 격퇴해 공세를 멈춰 세웠다"는 러시아 측 주장과 달리, 우크라이나군의 심상찮은 기세를 보여 주는 정황은 속속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러시아군) 포로 수백 명을 사로잡았고,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스 시설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본토 내에서 양국 군대 간 교전은 나흘째인 9일에도 이어졌고, 러시아 정부는 이 지역에 연방 차원 비상사태를 선포하기까지 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이에 따라 국경 지역의 피란민 수천 명이 쿠르스카야주의 주도(州都) 쿠르스크 등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8일 저녁 연설에서 "우리 군이 기습 작전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은 모두들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2022년 2월 침공으로) 우리 땅에 전쟁을 몰고 왔으니,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군의 러시아 본토 공격이 본격적으로 진행 중임을 에둘러 인정한 것이다.
러시아 군사블로거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게시한 사진·영상을 보면, 우크라이나군의 작전 지역에서는 미국·독일의 장갑차량이 목격된다. 그간 서방 국가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등 무기를 제공하되, 러시아 본토 공격과 관련한 사용은 엄격히 제한해 왔다. 러시아와 서방 간 직접 대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공세가 강해지자 올해 5월부터는 일부 제한을 풀어 줬는데, 이번에는 아예 지상전 무기가 러시아 국경을 넘은 것이어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이에 대해 사브리나 싱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국경을 넘어 공격이 들어오는 상황이라면, 대응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도 먼저 영토를 침공한 쪽은 러시아라는 점을 강조하며 "군사작전 수행 방식은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결정한다"고 단언했다. 이번 진격을 '방어 작전'의 일환으로 폭넓게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자국산 무기 사용도 용인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서방 내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진격에 다양한 목적이 내포돼 있다고 본다. 우선 북동부 공략을 통해 동부전선의 러시아 군세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꼽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젤렌스키 대통령 발언대로 전쟁이 '나라 밖의 일'이었던 러시아 국민들에게도 공포감을 심어 주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 법하다. '러시아 흔들기'의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궁극적으로는 향후 휴전 또는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미리 던진 승부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성공 가능성이 있는 11월 미 대선 전까지 최대한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갈 길이 바쁜 상태라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내 준 상태로도 전쟁을 끝내도록 압박하겠다'는 의중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