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 위원장의 지시 아래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시세조종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장대규)는 8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김 위원장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홍은택 카카오 전 대표,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 대표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로써 배재현 투자거버넌스 총괄, 강호중 투자전략실장,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회장을 포함해 6명과 카카오, 카카오엔터, 원아시아파트너스 법인 3곳이 재판을 받게 됐다.
김 위원장은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 주가를 공개매수가 12만 원보다 높게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카카오는 SM엔터를 인수하기 위해 533회에 걸쳐 2,400억 원을 들여 불법 시세조종에 나섰다. 먼저 지난해 2월 16, 17일과 27일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 등과 함께 1,100억 원의 SM엔터 주식을 사들였다. 28일에도 카카오와 카카오엔터 자금 1,300억 원을 동원해 주식을 직접 매집했다. 2월 27일엔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카카오 명의 입장문을 발표해 의도적으로 SM엔터 주가를 부양시켰고, 엔터업과 관련 없는 카카오 자금도 투입했다. 검찰 관계자는 "주문은 고가매수, 물량소진, 종가관여 등으로 이뤄졌고 이는 투자자들의 매매거래를 유인하는 대표적인 시세조종성 주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진행된 시세조종 범죄에 카카오그룹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김 위원장 지시가 있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검찰은 지난달 김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땐 2월 28일 하루의 시세조종 혐의만 적용했으나, 수사를 통해 나머지 3일에도 관여했다고 결론지었다. 이 관계자는 "임직원들은 수사에 대비해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할 목적이 없었다'고 미리 입을 맞췄고, 관련 대화방을 삭제하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고 강조했다.
카카오가 무리하게 SM엔터 인수에 나선 건 카카오엔터의 경영 개선을 위해서였다는 분석이다.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1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싱가포르 투자청에서 상장을 조건으로 1조2,000억 원대 투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2022년 기준 카카오엔터의 부채는 1조5,518억 원에 당기순손실은 약 4,380억 원에 이르는 등 경영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에 SM엔터 인수를 돌파구로 삼으려 했는데 경쟁자인 하이브가 등장했다. 하이브는 지난해 2월 SM엔터 인수를 위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인 12만 원으로 공개매수를 시작했다.
카카오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전 SM엔터와 신주 및 전환사채 인수 계약을 통해 값싸게 지분 9.05%를 확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수만 전 SM엔터 총괄 프로듀서가 이를 막아달라 가처분 신청을 내며 상황이 불투명해졌다. 인수계획이 밝혀진다면 SM엔터 인수 목적이 드러나 가처분 소송에서 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대항공개매수나 5% 이상 보유 보고 등 적법한 절차를 택하지 않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뒤 고정, 안정시켜 시장참여자들이 하이브의 장외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유인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날 카카오 측은 "향후 재판 과정에서 사실 관계를 성실히 소명하겠다"며 "정신아 CA협의체 공동의장을 중심으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CA협의체는 카카오그룹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협의하는 독립 기구다.
앞서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은 하이브와 카카오가 SM엔터 인수를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자 수사에 착수해 지난해 김 위원장 등 카카오 경영진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카카오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고, 지난달 김 위원장을 소환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지난달 23일 구속됐다. 서울남부지법은 이날 김 위원장의 사건을 형사15부(부장 양환승)에 배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