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감독이 격동의 시대를 다룬 작품관을 드러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과 같은 소재이지만 '행복의 나라'만이 갖고 있는 무기는 분명했다. 故 이선균의 유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추창민 감독은 세상을 떠난 고인을 두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8일 추창민 감독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나 영화 '행복의 나라'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조정석 이선균 유재명이 각각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와 명령에 의해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는 정보부장 수행 비서관 박태주, 그리고 권력을 위해 재판을 움직이는 합수부장 전상두로 분했다.
이날 추 감독은 "그간 몇 편을 개봉시켰지만 여전히 떨린다. 영화를 잘 만들고 싶지만 개봉을 할 땐 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작들 중 흥행작도 망한 작품도 있다. 영화가 잘 안 됐을 때 같이 노력한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 감독 입장에서 최소한 피해를 입히지 않길 바란다"라고 관객들을 만나기 전의 소회를 전했다.
추 감독은 2011년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찍던 도중 '행복의 나라' 연출 제안을 받았다. 당시 의문이 있었기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7년의 밤'을 마친 후 '행복의 나라'가 다시 생각이 났고 그렇게 메가폰을 잡았다. "다시 이 작품을 끄집어냈어요. 그때까지도 이 작품이 공중에 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왜 하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죠. 제가 관심이 있으니 고치겠다고, 수정을 했고 그렇게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다루는 '행복의 나라'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추 감독은 야만의 시대에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인물을 선택했고 시민의 정신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집중했다. 거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내기보다 인물을 시대로 치환하는 과정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불의에 항거하고 독재에 목소리를 냈던 수많은 이들 또한 추 감독이 힘을 준 대목이다. 또 누군가는 저항하고 소리를 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이 추 감독을 '행복의 나라'로 이끌었다.
지난해 11월, 같은 소재의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고 최종 스코어 1,312만 명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추 감독은 "'서울의 봄'이 규모도 크고 화려한 영화였기에 우리가 먼저 개봉하고 싶었다"라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당시 같은 해 10월 故 이선균의 마약 사건이 불거지면서 당시 후반 작업 중이었던 '행복의 나라' 개봉이 미뤄졌다. 이후 12월 故 이선균은 숨진 채 발견됐다.
추 감독은 "이른 개봉을 준비했지만 안타깝게 故 이선균 일로 '록'단계가 됐다. 그 일로 모든 것이 '스톱'이 됐다. 그 상태에서 저희들은 개봉하지 못했고 '서울의 봄'이 아주 잘 됐다. '서울의 봄'이라는 소재가 우리와 같은데 이런 이야기도 잘 만들면 사람들이 호응을 해준다는 신호가 반가웠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너무나 결이 다르다. '서울의 봄' 감독과 초반 기획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색깔대로 만들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암묵적인 결론을 냈다"라고 말했다.
추 감독은 전후 세대이자 독재, 최루탄, 누군가의 죽음이 익숙한 세대다. 그렇기에 추 감독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표현하고 싶었던 갈망이 있었다. 다만 추 감독은 '미화'를 주의했다. 희생당한 인물을 개인의 정서로 가지고 온 순간 맥락이 틀어진다는 작품관 때문이다. 추 감독은 "개인의 서사를 집중한 '서울의 봄'과 달리 저희는 객관적으로 들어갔다. 오히려 최대한 덜어냈다. 저도 '서울의 봄' 속 황정민을 보며 같이 분노했다. 그렇게 표현하면 아마 '서울의 봄'이 됐겠지만 '행복의 나라'는 메타포가 담긴 영화다. 제일 큰 차이점은 전두광과 전상두다. 우리의 전상두는 굉장히 점잖다. 혼자 있을 때 자신을 드러낸다. 야심이나 권력은 누군가가 숨어서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추 감독에 따르면 캐스팅부터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는 전두환이라는 특정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전상두를 맡을 배우를 기다렸다. 유재명의 캐스팅을 두고 추 감독은 "전상두를 할 배우가 많이 없었다. 나이와 유명세가 있어야 했고 후보가 많이 없었다. 유재명이 한 번 거절을 했지만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매달리고 조정석도 이야기를 하니 수락했다. 잘할 줄은 알았다. 유재명이 해준다면 너무 좋겠다 싶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정인우의 실제 인물은 인권 변호사이면서도 존중 받는 분이다. 그 분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조정석이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운동권의 열혈 투사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모두에겐 계기가 있다. 작은 시작으로 움직인다"라면서 "조정석도 처음부터 훌륭하기보단 속물적이지만 아버지를 구하고, 또 출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상황을 마주하며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의 성장이 제게 중요했다. 마지막에 박태주가 좋은 변호사라고 말한 이유가 성장을 담은 대사다. 이 영화를 만드는 주요한 키워드였다"라고 설명했다.
조정석에 대한 극찬은 거듭 이어졌다. 추 감독은 "스포츠카 같은 배우다. 엔진 예열처럼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3초가 걸린다. 순식간이다. 저럴 수가 있나. 굉장히 놀랐다. 강점이라곤 생각하지만 꼭 강점일까 싶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주역을 맡은 故 이선균은 어떤 배우였을까. 추 감독은 "편집이 완성되고 개봉을 고민하던 시기에 (故 이선균의 마약 의혹 제기) 사태가 일어나고 당분간 개봉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부적으로는 3~4년 안에는 개봉할 수 없다고 봤다. 이후 선균씨가 죽고 분위기가 반전돼 후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대사와 상황이 너무나 와닿았다. 이 부분이 영화의 색깔이니 편집에 손을 대지 말자고 말했다. 故 선균씨가 이번 영화에서 한 역할은 훌륭하다.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배우였다. 故 선균씨가 이 작품을 한 이유는 조정석 때문이다. 그 이유가 배우고 싶다더라. 아직도 톱스타이면서도 호기심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라고 회상했다.
'행복의 나라' 제목은 가수 한대수가 부른 동명의 노래 제목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추 감독은 "70년대 유행했던 곡인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영화에 행복의 나라라는 노래를 쓰고 싶었다. '행복의 나라'라는 단어가 의미있고 또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포스터 속 행복의 나라라는 글자가 깨져 보이는 것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중간에 음악을 쓰는 것은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과감히 쓰려고 삽입했다"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