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인상 뒤 진보 본색…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 월즈, 강렬한 데뷔

입력
2024.08.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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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와 핵심 경합주 첫 동반 유세
“지독하게 이상해” 트럼프·밴스 공격
뚜렷한 대비… 공화, 극좌 낙인 채비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의 데뷔 무대는 강렬했다. 푸근한 인상, 유쾌한 재담으로 포장된 ‘새 얼굴’의 진보 본색과 공격 본능이 드러나자, 지지자 1만여 명은 열광했다. ‘진보·흑인·여성’인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백인 남성이지만 같은 진보파인 월즈로 결정되면서, 11월 미국 대선의 보혁 대비 구도는 더 뚜렷해졌다. 당장 공화당 측은 이념 공세를 강화할 기색이다.

“자신에게만 봉사하는 트럼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 템플대에서 6일 저녁(현지시간) 열린 민주당 대선 유세의 마지막 순서는 이날 오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월즈의 연설이었다. 이날 공개된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과 여론조사업체 마리스트의 조사에서 응답자 70%가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을 정도로 그의 전국적 인지도는 낮았다.

그러나 월즈가 공화당 정·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JD 밴스 연방 상원의원을 겨냥해 재기 넘치는 비판을 던지자, 유세장을 메운 청중 1만2,000명은 큰 호응으로 화답했다. 무엇보다 본인 경험과 공세를 잘 버무렸다. 월즈는 “트럼프는 봉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자신을 돌보는 데 너무 바빠서 봉사할 시간이 없다”고 상대방 대선 후보를 약 올리면서, 자신의 24년간 주방위군 복무 경력을 함께 언급했다.

본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타로 만든 직관적 표현 “괴상하다(weird)”도 십분 활용했다. “예일대에서 공부했고,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지원으로 경력을 쌓았으며, 고향을 쓰레기 취급한 베스트셀러(‘힐빌리의 노래’)를 썼는데, 그것은 미국 중산층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밴스를 비난하는 대목에서였다. 월즈는 “지독하게 기이하고 이상하다”는 말로 자신의 유행어를 업그레이드했고, “그(밴스)와 토론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며 박수도 유도했다.

방어를 공격으로 바꾸는 기술도 선보였다. 월즈는 “분명히 말하는데, 트럼프 정권하에서 폭력 범죄가 증가했다”며 잠시 말을 멈춘 뒤, “그(트럼프)가 저지른 범죄는 세지도 않았다”고 했다. 앞서 필라델피아에서 유세를 벌인 밴스가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졌을 당시 주지사였던 월즈를 향해 “폭도들이 도시를 불태우도록 방치했다”고 주장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연설 중 한국도 깜짝 등장했다. 주민 400명가량인 네브래스카주 웨스트포인트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고 자신을 소개한 월즈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의 권유로 17세에 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까지 남은) 91일간, 그리고 (당선 후) 백악관에서 나는 매일 해리스 부통령 뒤를 지키겠다. 여러분의 뒤에는 우리가 있을 것”이라며 연설을 마쳤다.

“최적의 자유 수호 파트너”

해리스의 핵심 화두는 ‘자유’였다. 그는 여성 임신중지(낙태)권과 성소수자 권익 보장, 총기 규제 강화 등 진보 의제들을 ‘근본적 자유 수호’라는 목표로 묶어 설파하며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결정할 자유”, “사랑하는 이를 자랑스럽고 공개적으로 사랑할 자유”, “총기 폭력에서 안전할 자유” 등을 거론했다. 이어 “자유를 지키는 싸움을 함께할 동반자로서 최적 파트너”라고 월즈를 극찬했다.

더불어 ‘기회’와 ‘미래’도 부각했다. 해리스는 “한 명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딸로 일하는 어머니에 의해 키워졌고, 다른 한 명은 네브래스카주 평원의 아들로 농장에서 일하며 자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두 중산층 아이가 백악관까지 함께 가는 건 미국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보수로 기운 미네소타주 남부 농촌에서 12년간 월즈를 6선 하원의원으로 생존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를 온건 중도파로 보이게 만드는 ‘문화 정치’였다. 하지만 주지사 재임 중 도입한 정책들은 하나같이 진보색이 강하다. △보편적 무상 급식 △저소득 대학생 등록금 지원 △생식권 보호 △투표권 확대 △중산층 감세 등이다.

월즈와 막판까지 경합한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지지층 확장이 더 수월할 중도 성향인 데다 양당 모두 사활을 거는 핵심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에서 인기가 많다. 여론조사 지지율도 약 60%다. 진보파 진용 구성의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 트럼프는 이날 SNS 트루스소셜에 부연 설명 없이 “고맙다!”고만 썼다. 셔피로보다 진보적인 월즈가 낙점돼 안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브라이언 휴스 트럼프 캠프 선임고문은 성명에서 “해리스가 위험할 정도로 진보적이고 약하며 실패한 자신의 의제 추진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극좌’ 낙인을 찍고 색깔론을 펴는 게 공화당의 주요 전략이 되리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