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사상가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을 기리는 전남 강진군 '다산 박물관' 안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기념관을 조성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기념관엔 유 전 청장의 흉상도 설치된다.
유 전 청장이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을 '남도 답사 1번지'로 꼽은 만큼, 그의 일생과 업적을 돌아보는 문화관광 자원을 만들겠다는 게 강진군의 취지다. 그러나 다산과 관련 없는 생존 인물의 기념관을 국비로 운영되는 다산 박물관에 만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강진군은 다산 박물관을 리모델링해 '유홍준의 남도답사1번지 기념관(가칭)'을 설립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강진에 유홍준 기념 공간을 조성한다는 설이 나돈 건 지난해 12월. 전라남도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출간 30주년을 맞아 강진에 유홍준 기념관 건립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강진군은 후보지 3곳 중 다산 박물관을 낙점했고, 다산 박물관은 예산 2,000여만 원을 군에서 지원받아 A업체를 통해 3개월간 기념관 조성을 위한 용역을 진행했다.
올해 4월 A업체가 작성한 '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전시관 조성 과업지시서'에 따르면, 기념관은 다산 박물관 내부에 조성될 예정이다. 다산 박물관 1층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133㎡(40평) 공간을 리모델링해 기념관을 만들고 유 전 청장으로부터 기증받은 물품을 전시한다는 게 골자다. 유 전 청장 기증품 보전·관리를 위해 박물관의 수장고를 공유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12권과 답사 자료, 유 전 청장의 드로잉, 부채 작품, 개인 수집품 등 100여 점으로 채우고, 그를 본뜬 흉상과 시청각 자료를 제작해 전시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기증품 목록에는 소치 허련, 백하 윤순 등 남도 작가의 서화 작품 외에 이 지역과 무관한 병풍, 지도, 도자기 등이 들어 있다.
"유홍준의 눈빛이 닿자마자 그 사물은 문화의 총체로 활짝 꽃피운다"(고은 시인), "유홍준처럼 입심 좋고 솜씨 좋고 먹성 좋고 눈썰미 사납고 꽤나 극성맞기도 한 연구자 겸 평론가를 만난 것은 여간한 복이 아니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홍보 문구를 기념관에 새기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2014년 개관한 다산 박물관에는 다산이 강진에 유배돼 지낸 18년간 남긴 '목민심서'를 비롯한 저술, 친필 편지, 서화 등 유물 300여 점이 소장돼 있다. 글을 쓰고 제자들을 가르친 '다산초당', 기거하던 오두막집인 '사의재', 혜장선사와 교류했던 '백련사' 등 인근 유산들의 의미도 짚는다. 전문가들은 다산학을 종합하는 문화공간에 이질적인 내용의 전시가 공존하는 데 따른 혼선을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산 연구자는 "다산 박물관은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될 만큼 위대한 사상가이자 개혁가인 다산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인데, 유사점을 찾기 힘든 생존 인물의 업적을 기념하는 공간을 나란히 만들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다산 박물관이 지닌 역사문화적 순수성을 반감시키고 관람객의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진군은 유홍준 기념관 조성이 지역 관광 발전에 도움이 되기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강진군은 지역 관광 활성화 명목으로 기념관 건립을 위한 예산 10억 원을 확보했다. 강진군 관계자는 "시설 규모 등에서 다산 박물관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아직 확정된 안이 아닌 만큼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청장은 "기념관이 생기는 것이 지역에 득이 된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기증한다고 한 것"이라며 "단독 건물은 부담돼 이미 있는 문화시설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을 뿐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