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바둑계의 절대권력이 10년여 만에 교체됐다.
5일 한국기원에 따르면 8월 국내 여자바둑기사 랭킹을 집계한 결과, 1위 자리가 기존 최정(28) 9단에서 김은지(17) 9단으로 바뀌었다. 2010년 5월 입단한 최 9단은 2013년 12월 여자랭킹 1위에 올라선 이후 지난달까지 무려 128개월 연속 지존 자리만 고집했던 K여자바둑계 간판스타다. 최 9단은 지난 2022년 세계 메이저 기전으로 열렸던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우승상금 3억 원)에선 여자기사로는 최초로 준우승까지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올 들어 뚜렷한 하락세인 최 9단은 지난 6월 개최됐던 ‘제10회 황룡사배 세계여자바둑대회’(우승상금 30만 위안, 한화 약 5,700만 원)에선 충격적인 6연패를 당하면서 최하위로 마감했다. 최 9단은 지난 7월에도 2승 2패에 그치면서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 9단은 남·녀 프로기사를 통합한 8월 종합 랭킹에서도 전월 대비 6계단 떨어진 35위로 밀렸다.
반면 K여자바둑계의 미래권력으로 주목된 김 9단은 지난 2020년 1월 입단 이후, 수직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엔 무려 14승 2패 성적으로 괴력을 과시했다. 김 9단의 남·녀 통합 8월 랭킹 또한 전월 대비 15계단 상승한 32위에 마크, 개인 최고 랭킹을 경신했다.
다만, 아직까지 대세가 김 9단에게 확실하게 넘어갔단 의견엔 의문 부호도 찍힌다. 두 선수의 통산 전적에선 여전히 최 9단이 14승 5패로 앞선 데다, 지금까지 가졌던 5번의 타이틀 매치에서도 최 9단이 4번을 승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교체는 이미 시작됐단 시각도 적지 않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최 9단이 ‘에이징 커브’(시간 흐름에 따른 기량 저하) 시점에 들어선 게 아니냐”는 관측에서다. 실제 김 9단은 4번의 결승에서 패한 뒤 지난해 12월 만났던 ‘제7회 해성 여자기성전’(우승상금 5,000만 원) 결승에서 처음으로 최 9단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여기에 김 9단이 3번기(3판2선승제)로 현재 진행 중인 ‘2024 닥터지(Dr.G) 여자최고기사결정전’(우승상금 4,000만 원) 결승 1국에서 최 9단에게 승리, 유리한 고지도 점령한 상태다. 전직 한국 바둑 국가대표팀 관계자는 “아직까지 최 9단이 전성기에서 완전히 내려왔다고 보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2024 닥터지’ 우승컵의 향배에 따라 두 선수의 위상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