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조각' 된 해피머니… 헌혈용 구매한 적십자사도 수십억 물렸다

입력
2024.08.0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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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최근 유동성 위해 대규모 할인
해피머니 사용 못 해 구매자들만 손해
"해피머니도 티메프 사정 안 것 아니냐" 
상품권 관련 피해자들 집단대응 예고

2일 오전에 찾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빌딩. 얼마 전까지만 해도 5층에 해피머니 상품권 발행사 해피머니아이엔씨가 입주해 있었지만, 로비 안내판에는 회사 이름이 가려져 있었다. 역시나 5층 사무실은 불이 꺼진 채 철시된 상태였고, '항의 방문자 폭증으로 정상 근무가 불가능해 전 직원 재택근무 중'이라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직원들은 떠났지만, 소비자들이 남긴 분노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셔터에는 '돈 내놔' '환불해 줘' 등 항의성 메모들이 다수 붙어 있었다. 현재 해피머니는 티몬·위메프의 판매 정산 지연 사태로 1,000억 원 상당의 상품권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하면서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다.

해피머니 상품권은 티몬·위메프에서 10% 가까운 높은 할인율로 판매돼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던 상품이다. 9,000원 남짓이면 1만 원 정도 가격의 상품을 살 수 있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해피머니를 충전하는 '개인 헤비 유저'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티메프 사태 이후 해피머니 상품권을 받는 곳은 거의 다 사라져, 해피머니 상품권은 사실상 부도 수표가 된 상태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해피머니 피해'를 검색하자 여러 개의 단체채팅방이 존재했으며, 참가자가 수천 명이 넘는 곳도 있었다. 개인 피해자뿐 아니라 상테크(상품권 재테크) 차원에서 수십억 규모로 상품권을 매입한 업체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티메프가 무리하게 특가를 내세운 시점부터 해피머니 측이 유동성 부족 상황을 알면서 판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상품권 물량을 풀었고, 해피머니도 매출 증대를 위해 무리하게 상품권을 발행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티몬은 5월부터 이달 초까지 한정된 시간에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타임딜'의 주요 상품으로 해피머니를 내세웠다. 원가보다 약 10% 정도 저렴하게 팔았다고 한다.

해피머니 상품권 구매자들은 집단 대응에 나섰다. 피해자들 일부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류승선 해피머니아이엔씨 대표를 사기 혐의로 처벌해 달라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또 2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해피머니 피해자 단체집회를 열고 환불을 촉구했다. 집회에 참여한 30대 박모씨는 "이달 200만 원의 상품권을 구매했는데,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다"며 "해피머니 측은 전화도 안 받고 인터넷 민원 답장도 없는 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는 해피머니 구매자뿐 아니라 해피머니로 판매 대금을 받던 관련 업체들로까지 불똥이 튄 상태다. 해피머니를 취급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 시기 때마다 해피머니 측에 판매대금 정산을 위해 등기를 보내는데, 수령인이 없어 등기가 반송된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불안해했다.

대한적십자사도 헌혈 기념품 중 하나로 해피머니 상품권을 지급했는데 올해도 33억 원어치 상품권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지난주 해피머니 측에 내용증명을 보냈고 현재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오세운 기자
김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