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군축, 협정도 의지도 없다... 고삐 풀린 핵 경쟁 시대

입력
2024.08.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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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의 핵 전력 강화와 우리의 대응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리포트입니다.

미 공화·민주, 모두 핵 증강 지지
대선 결과 상관 없이 확대 논의할 듯
미 확장억제 확립해 북핵 대응하고
러·북 협력 저지, 국제 사회 힘 합쳐야

미국, 중국, 러시아의 경쟁적인 핵 역량 강화, 그리고 북한, 이란의 불법 핵 개발은 지역 핵 안보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다.

먼저 미국은 지난 5월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임계 이하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중국, 러시아에 대한 핵 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 중국은 핵무기 수를 급속히 증가시키고 있으며, 극초음속 미사일인 동풍-17 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핵 능력을 확장하고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술핵 사용 위협을 높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우주 핵무기 배치까지 추진 중이다. 북한의 경우, 러·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양국 간 무기 거래 및 핵기술 이전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렇게 핵 질서는 불안정한데, 강대국들은 핵 관련 조약에서 연이어 탈퇴하고 있다. △2019년 미국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2023년 러시아의 신전략무기 감축협정(New START) 중단 선언 및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철회 등이 그 사례다.

더 큰 문제는 2026년 이후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을 대체할 군축 협정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차기 핵군축 레짐 제안에 대해 러시아는 냉소적인 반응이며, 중국은 ‘미국·러시아가 의미 있는 수준까지 감축하면 군축회의에 동참하겠다’며 팔짱을 끼고 있다. 특히 비확산 레짐을 지탱하는 조약들의 잇단 붕괴는 인도, 파키스탄 등 지역 핵무장 국가의 경쟁적인 핵 능력 증가와 맞물려 국제 핵 질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주변국의 핵 전력 강화 경쟁

미ㆍ중ㆍ러는 핵탄두의 증산 혹은 현대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실질적인 억제 능력을 높이고,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해 B61-12 수명연장프로그램 등 ‘저위력 핵무기’(20킬로톤 이하 폭발력을 가진 전술용 핵무기)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핵무기를 투발할 수 있는 3대 핵심 전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현대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경우, 미니트맨(Minuteman) Ⅲ를 대체할 GBSD(Ground-Based Strategic Deterrent·지상기반전략억지) 개발을 추진 중이다. 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오하이오급 잠수함(SSBN)을 2027년부터 퇴역시키고, 2030년대엔 콜롬비아급 잠수함을 운용할 예정이다. 전략폭격기는 B-52와 B-2 대신, 2020년대 중반에는 차세대 전략폭격기 B-21을 배치할 계획이다. 이런 핵 역량 강화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 의회를 비롯해 바이든 행정부 및 트럼프 전 대통령도 핵무기 증강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오는 11월 미 대선이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미국 내에서는 핵 역량 확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역시 지난해보다 90개나 늘어난 5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는 등 핵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2030년경에는 1,000개를 넘어설 것(중국군사력보고서·2023년 미 국방부)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개량 ICBM 둥펑(東風)-41 △사거리 1만2,000km의 쥐랑(巨浪)-3 SLBM △스텔스 성능을 갖춘 H-6N 전략폭격기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최신형 핵잠수함 094A와 096형을 개발 중이다. 더불어 탄도미사일의 생존성 강화를 위해 신장위구르와 간쑤성 인근 등에 다수의 핵미사일 격납고를 건설 중이다.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2024년 초 기준 4,380개로 추정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인 사르마트(Sarmat) △극초음속 미사일인 아방가르드(Avangard) △항공기 탑재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Kinzal) △핵탄두 탑재 수중 어뢰인 포세이돈 △핵 추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 등 5대 핵 전력을 중심으로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특히 지난 2월에는 ‘저궤도 우주 핵무기 배치’ 의혹이 제기되는 등 핵무기 활동 영역이 우주까지 확장하는 추세다.


북한의 핵 전력 강화 추세 및 전망

북한은 2022~2023년 총 56차례, 올해는 18차례나 미사일 시험 발사를 실시, 핵 역량 구축과 전술핵 위주의 작전계획을 표방하고 있다. 전술핵 교전의 확전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확증 보복용인 전략핵 사용 단계를 결합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의 핵전략과 실제 능력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지난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극초음속 미사일, 핵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등 전략 무기 개발을 완료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확보된 미사일 능력과 전술핵을 활용해 위기감을 조성, 전략무기 확보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자 할 소지도 있다. 최근에는 러·북 정상회담을 통해 불거진 양국 간 무기거래 및 핵기술 이전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다.

북한은 핵실험을 원한다. 고위력 핵무기, 그리고 핵탄두 소형화를 위한 저위력 핵무기 개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ICBM과 관련, 탄두의 정확성을 높이고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11월 미 대선은 이런 전략 도발 동기를 더욱 자극할 재료다. 우리가 북한의 움직임을 더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대비책은

주요 국가의 핵 전력 증강 현실을 보며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 강대국의 핵 군비경쟁이 공세적이고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미국의 임계 이하 핵실험과 러시아의 우주 핵무기 배치 등이 그렇다. 둘째, 주변국의 핵 역량 구축 패턴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이들은 핵무기, 그리고 첨단기술이 적용된 재래식 무기를 통합 운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셋째, 러시아가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필요한 기술을 실제로 지원할지 여부다. ICBM, 정찰위성 등 기술 지원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변국 핵 경쟁과 북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먼저, 역내 핵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도적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아울러 주변국의 핵무기 개발 동향을 주시하면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둘째, 한ㆍ미핵협의그룹(NCG)으로 대변되는 美확장억제체계의 확립을 통해 북핵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진행된 △‘한반도 핵 작전 지침’ 서명 △제3차 NCG회의에서의 ‘한미 핵·재래식 수단 통합(CNI) 운용’ 구체화 등은 괄목할 성과 중 하나다.

셋째, AI, 무인기술, 우주, 로봇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재래식 무기 억제책을 보강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러·북 군사 협력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및 국제사회와의 공조 노력 강화가 더욱 요구되는 이유다.


이성훈 실장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랜드연구소 방문학자를 다녀왔다. 합참과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를 역임하고 합동참모대학장을 거쳐 합동군사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한국 안보외교정책의 이상과 현실'이 있으며 한미동맹·핵전략·항공우주전략이 주요 연구 분야다.

이성훈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