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취임 첫날은 모든 게 속전속결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야당의 반대 속에 이 위원장을 임명했다. 이 위원장은 곧바로 출근해 전체회의를 열어 KBS 이사진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선임안을 의결했다. MBC 사장 임면권을 가진 방문진 이사 9명 중 6명이 여권 성향 인사로 채워지면서 MBC 경영진 구성과 기사 보도 논조가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KBS 이사진은 현재도 여권 성향 이사가 전체 11명 중 6명으로 우위여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의 취임은 지난 26일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마무리한 지 닷새 만이다. 청문회에서 그의 대전MBC 사장 시절 법인카드 사적 사용 의혹, 정치적 편향성, 역사관 문제 등이 제기돼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됐지만 윤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윤 대통령은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보냈다. 그는 '친윤석열 인사'로 꼽힌다.
이로써 30일까지 상임위원이 '0명'이었던 방통위는 '여권 성향의 2명 체제'로 돌아갔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여야의 대치 탓에 방통위는 2명 체제에서 KBS 경영진 교체와 YTN 민영화 등을 실행해왔다. 방통위 상임위원 정원은 5명이며, 안건 처리를 위한 의결정족수는 상임위원 2명이다.
이 위원장은 임명된 지 약 2시간 만에 출근해 취임식을 마쳤고, 8시간 만에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위한 전체회의를 열었다. 장관급 기관장으로서 현충원 참배도, 임명장 수여식도 생략했다.
초고속으로 의결된 이사진 면면을 보면, 방통위 추천 후 대통령이 임명하는 KBS 이사로는 권순범 현 KBS 이사, 류현순 전 한국정책방송원장, 서기석 현 이사장, 이건 여성신문사 부사장, 이인철 변호사, 허엽 영상물등급위원회 부위원장, 황성욱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 등 7명이 이름을 올렸다.
방통위가 바로 임명하는 방문진 이사로는 김동률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 윤길용 방심위 방송자문 특별위원, 이우용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임무영 변호사, 허익범 변호사 등 6명이 선임됐다. 방문진 감사엔 성보영 쿠무다SV 대표이사가 임명됐다.
KBS와 방문진 모두 여권 추천 이사 선임만 완료됐다. 방통위는 “나머지 이사에 대해선 추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이 이처럼 속전속결로 나선 건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기 전에 KBS와 방문진 이사진을 교체하는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방문진 이사진 임기는 8월 12일에, KBS 이사진 임기는 같은 달 31일에 끝난다. 이사 공모와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만큼 의결에 문제가 없다는 게 방통위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 탄핵안을 8월 1일에 발의하겠다고 별렀지만, 이 위원장의 마이웨이를 막을 순 없었다. 탄핵안의 국회 본회의 보고 후 24~72시간 안에 표결해야 한다는 국회법에 따라 탄핵안 처리는 8월 2일 이후에 가능하다.
민주당이 탄핵안을 발의해 통과시킬 경우 이 위원장은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과는 달리 탄핵안 표결 전에 자진 사퇴하지 않고 직무정지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여권의 '공영방송 경영진 및 이사진 교체'가 대부분 마무리된 만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다음 방통위원장을 인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탄핵에 대한 헌재의 최종 결정까지는 최소 4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시민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진보연대 등이 참여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31일 이 위원장을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방통위 앞에서 이 위원장 임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진숙 임명은 공영방송의 장악과 파괴로 가는 길”이라며 “이진숙 위원장은 방송의 공정성·공공성·독립성뿐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를 파괴할 흉기가 될 것이 뻔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