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사진 찍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기계체조 대표로 참여했던 이은주는 이 작은 행동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예선을 마치고 북한 홍은정에게 다가가 '셀피'(셀프카메라) 촬영을 제안한 것이다. 홍은정이 수락하면서 두 선수의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남겨졌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당시 셀피를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올림픽에서 정치적으로 의미 있었던 순간' 10개 중 하나로 뽑는 등 외신들도 관심을 보였다.
8년이 지나 열린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두 사람의 셀피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사우스 파리 경기장에서 진행된 탁구 혼성복식 시상대에서 촬영된 또 다른 셀피가 계기다. 동메달을 획득한 임종훈은 자원봉사자로부터 전달받은 휴대폰을 쥐고 같은 팀 신유빈, 금메달을 따낸 중국 왕추친-쑨잉사, 은메달을 따낸 북한 리정식-김금용과 시상대 위에서 '셀피 타임'을 가졌다.
남북 선수가 셀피를 찍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이번 대회에서 운영 중인 '빅토리 셀피' 프로그램 덕이다. IOC 공식 후원사인 삼성전자가 선수들이 시상대 위에서 셀피를 찍을 수 있도록 IOC와 협업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촬영 계기는 8년 전과 달랐지만, 따뜻한 분위기는 비슷했다. 쑨잉사의 제안으로 구도를 바꿔 여러 차례 촬영하는가 하면 김금용이 미소를 보이는 장면도 포착됐다. 경직된 남북 관계와 무관하게, 스포츠를 위해 모인 축제의 자리였기에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과거에도 스포츠 행사를 계기로 비슷한 모습이 연출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리우 대회 남자 사격 50m 권총 시상식엔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의 진종오와 동메달을 획득한 북한의 김성국이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다. 당시 진종호는 "김성국에게 '앞으로 형 보면 친한 척해라'라고 말해줬다"면서 웃었고, 김성국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1등과 3등이 조선(한국)의 것으로 하나의 조선에서 더 큰 메달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자회견장에서 동메달을 따낸 역도 대표 김수현의 유쾌한 소감 발표에 북한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김수현이 북한 선수들을 칭찬한 사례도 주목을 받았다.
다만 공식적인 화합 기회는 줄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진행된 남북 공동 입장이 대표적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남북이 다시 한반도기를 함께 들고 입장했지만, 남북 관계가 일시적 해빙에 그치면서 다음 차례는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