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무한정 공급 능사 아냐... 불필요한 의료이용 관리도 시급하다

입력
2024.08.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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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K의료: ③의료수요 감축 반드시 병행돼야]
한국 연간 외래진료 15.7건... OECD 평균 3배 '1위'
의사 공급 확대에 함께 의료수요 감축 병행돼야
전문가들 "주치의제, 행위별수가제 개편 등이 대안"

편집자주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며 의료개혁 기치를 올린 지 6개월. 의대 정원이 내년부터 대폭 늘어나 의사 인력 부족 해소의 전기가 마련됐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은 의료체계를 보다 지속가능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내외 의료현장 취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의료개혁 성공 조건과 보완 과제를 점검한다.

2,535회. 70대 남성 A씨가 지난해 병원을 방문한 횟수다. A씨는 진통제 주사를 맞으려 하루 평균 7곳, 최대 12곳의 병원을 다녔다. 총치료비는 3,957만 원. 이 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 70%인 2,625만 원을, A씨가 나머지 1,332만 원을 부담했다. 공단이 가입자 한 명에게 연간 지출하는 돈이 평균 72만 원인데, A씨의 '의료 쇼핑'을 위해선 평균치의 36배가 넘는 돈을 지불한 셈이다.

40대 여성 B씨도 마찬가지. 주로 주사 치료와 침 치료를 받으러 지난해 1,856회 병원을 찾은 B씨는 총치료비 3,534만 원 가운데 2,463만 원을 건강보험 급여로 처리했다. 같은 해 병원을 1,782회 찾아 주사 치료와 물리 치료를 받은 70대 남성 C씨는 총치료비 4,729만 원 가운데 3,704만 원을 공단에 부담시켰다.

이런 과다 의료이용 사례는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병원에 자주 가는 한국 의료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OECD 회원국 평균(5.9회)의 2.7배인 15.7회로 가장 많았다. 인구 1,000명당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건수 역시 한국이 281.5건으로 OECD 평균(161건)보다 75%가량 많은 1위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지역의료 붕괴 등 의사 공급 부족을 해소하고자 의대 정원을 늘렸다면, 이젠 여론의 부담을 무릅쓰고서라도 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정리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마침 정부가 이달부터 1년에 365회 이상 외래 진료를 보는 경우 본인부담금을 90%로 올리고, 의료이용이 현저히 적은 국민에겐 건보료 10%를 바우처로 돌려주는 수요 통제 정책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면서 주치의 제도 확립, 행위별 수가제 탈피, 치료에서 예방으로의 의료 패러다임 전환 등을 주문했다.

'나를 아는 의사'이자 게이트키퍼... 주치의 제도

전문가들은 과다 의료이용을 방지하고 국민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면 주치의 제도 확립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주치의 제도는 환자가 거주 지역에서 원하는 의사를 선택해 주치의로 등록하고 주치의에게 일차적인 외래진료를 받는 시스템을 말한다.

환자가 몸에 이상을 느끼면 주치의를 찾아가 치료를 받고, 주치의는 필요한 경우 상급병원에 환자 진료를 의뢰하게 된다. 주치의가 만성질환 관리, 예방 접종, 건강 검진 등으로 환자 건강을 일대일 관리하는 동시에 의료이용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주치의 제도하에서는 환자가 원하는 병원을 아무 데나 갈 수 없기 때문에 중복 치료·투약을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세계보건기구(WHO)도 환자 등록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지만 한국은 아직 주치의 제도가 없다"며 "그러다 보니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의료이용이 늘어나게 된다"고 진단했다.

의사가 환자 자주 부르게 하는 수가제 손봐야

의사들이 환자를 병원으로 자주 부르게 만드는 '행위별 수가제'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 검사, 수술 등 의료행위별로 가격을 매겨 비용을 결정하는 구조다. 의사 입장에선 잦은 진료로 의료행위를 늘릴수록 수입이 늘어나게 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외래진료는 '한 번 오면 끝'인 개념인데, 한국은 환자가 같은 치료를 위해 두세 번은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하다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환자는 공급자인 의사가 권하는 대로 의료이용을 하기 쉬운 만큼,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수가 체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근본적으론 치료 중심의 현행 의료체계를 '예방 및 건강 증진' 위주로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다. 초고령화로 의료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아픈 사람을 치료한다'는 관점을 넘어 '사전 관리를 통해 질병에 걸리는 사람을 줄인다'는 원칙을 의료체계 핵심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뇌혈관 질환을 예로 들면, 지금은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환자를 제때 치료하는 방안에 집중하고 있지만 예방 위주의 패러다임에선 심뇌혈관 고위험자를 가려내 발병을 예방할 수 있는 생활습관을 교육하는 것을 우선시하게 된다.

오영호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도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느껴 보건소에서 건강 증진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올스톱됐었다"며 "당뇨, 심혈관, 근골격계 질환 등 구체적인 질환에 따라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