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와 산은의 수상한 거래... 또 다른 주가조작 정황

입력
2024.07.25 04:30
1면
통정매매로 주가 띄우는 방식 아닌 신종 수법
주가 하락 시기에 진행... 검찰 수사망 피한 듯
파생상품 연계해 12억 투자해 110억 수익 추산
김건희 여사 자금도 투입... "최종 수익자 조사해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이 검찰이 기소한 주가조작 외에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파생상품과 연계한 신종 수법으로 60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수사당국이 주목하지 않았던 2011~2017년에 이뤄진 데다, 김건희 여사의 자금도 활용된 것으로 확인돼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한국일보가 금융전문가 A씨의 조언을 받아 2011~2017년 도이치모터스(도이치)의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권 전 회장 일당은 도이치 신주인수권을 낮은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하고 높은 가격에 팔아 110억 원(공시기준 60억 원)에 달하는 차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됐다. A씨는 2000년대 기관투자자 대상으로 BW 거래 구조를 설계한 인물로, 도이치 주가조작의 '주포'로 알려진 김모씨 지인이다.

A씨는 "통정매매로 주가를 띄우고 언론 등을 통해 호재성 소식을 알리는 방식은 과거의 주가조작 방식"이라며 "김씨는 BW 구조를 악용해 주가를 띄우는 기존 방식이 아닌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린 뒤 파생상품을 연계해 보유 주식 수를 늘리고, 이후 주가를 다시 올리는 신종 주가조작 방식을 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검찰과 재판부는 2010~2012년 통정매매 방식으로 주가가 2,000원대에서 8,000원대까지 오른 것만 주가조작 사건으로 다뤘다.

신종 주가조작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선 BW 구조를 알아야 한다. BW는 회사채에 일정 기간 후 '행사가액'으로 발행회사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결합한 복합 금융상품이다. 분리형과 비분리형으로 나뉘는데, 분리형 BW는 고정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채권과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신주인수권)를 따로 매매할 수 있다.

"3,500원 밑으로 딜"... 최은순 말이 단서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신한투자증권의 한 직원에게 건넨 대화 내용을 보면 2011년 6월 이전부터 이들은 신종 주가조작을 계획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씨는 2011년 6월쯤 "이거(도이치 주가)가 3,500원 밑으로 (권오수) 회장이 딜을 해 놓았대. 주식을 어차피 떨어뜨리지 않으면 성사가 안 된대"라고 말했다. 당시 검찰과 재판부는 이를 최씨가 내부정보를 듣고 주가 하락 전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회피했다고만 봤다. 하지만 권 전 회장이 누군가와 '딜'을 했고, 이를 성사하기 위해 주가를 3,500원 아래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당시 주가는 7,000원대였다.

최씨가 '딜'을 언급한 지 6개월 후인 2011년 12월 19일 도이치는 사모 분리형 BW 250억 원을 발행한다. 인수자는 산업은행이었다. 산업은행이 도이치에 250억 원을 빌려주면서, 250억 원어치 신주를 행사가액(5,560원)에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도 받는 계약이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추후 주가가 5,560원 이상으로 오르면 신주인수권을 주식으로 전환한 뒤 매매해 차익까지 얻을 수 있었다. 발행 목적은 도이치모터스 AS센터 건설로, 3년 만기 이자율은 연 3%였다.

의아한 일은 BW 인수 다음 날 발생한다. 산업은행이 BW 발행 주관사던 KB투자증권에 신주인수권 150억 원 규모(269만7,000주)를 되판 것이다. 이는 다시 권 전 회장에게 넘어갔다. 신주인수권 가격은 주당 278원으로, 권 전 회장은 총 7억5,000만 원을 지급했다. 이후 권 전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 보고서에서, 권 전 회장은 김건희 여사로부터 5억 원을 빌려 신주인수권을 매입했다고 답했다.

"주가조작 기점은 산은의 BW 투자... 특혜 의심"


A씨는 이를 두고 "특혜가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시 도이치가 공시한 신주인수권의 이론가격은 1,126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론가격은 해당 신주인수권의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다. 금융감독원은 이론가격 대비 헐값에 신주인수권을 넘기는 사례가 발생하자 2000년 5월 이론가격과 실제 매도가격이 다를 경우 그에 대한 설명을 공시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산업은행을 비롯해 국가, 지방자치단체, 한국은행 등은 신주인수권 관련 거래 내용에 대한 공시 의무를 면제받았다.

산업은행은 2013년 2월 남은 100억 원 규모(256만9,400주)의 신주인수권까지 한양증권을 통해 도이치의 주요 주주인 이승근씨에게 매각한다. 처분 단가는 주당 176.9원(총 4억5,000만 원)이었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외제 차 파는 회사가 무슨 발전성이 있다고 산업은행이 250억 원을 투자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신주인수권을 다시 권오수와 이승근에게 헐값에 넘기면서 주가조작 작전이 시작된 것을 보면 산업은행 역시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측은 "투자에 관여한 인물들이 이미 퇴직한 상황"이라면서 "당시 산업은행이 수익성이 있는 BW에 투자했고, 그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신주인수권을 싼값에 매각한 것에 대해선 "가치평가를 통해 신주인수권을 매각했다"면서 "주가가 오를 때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당장의 매도 수익을 택해 리스크를 줄인 것 같다"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새로운 작업이 시작된다. 바로 '리픽싱'이다. 리픽싱은 주가가 낮아질 경우에 전환 가격이나 인수 가격을 함께 낮출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일컫는다. BW 계약에선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주가가 내려가면 3개월마다 신주로 전환할 수 있는 행사가액 역시 하향 조정하는 리픽싱 조건을 둘 수 있다. 즉 신주인수권 소유자 입장에선 주가가 내려갈수록 유리하다. 행사가액 역시 하향 조정하면서 같은 금액으로 전환할 수 있는 주식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도이치의 주가가 이 시기 계속 떨어지면서 2012년 12월 20일 행사가액은 최초 가액의 70%인 3,892원까지 내렸다. 전환 가능한 주식 수 역시 449만6,400주에서 642만3,400주로 늘어났다.

권오수→김건희→사모펀드... 최종 수익자는?

권 전 회장과 이씨가 매입한 신주인수권은 복잡한 경로로 이전된다. 김건희 여사는 2012년 11월 13일 권 전 회장으로부터 신주인수권 51만464주를 주당 195.9원에 샀다. 전체 매매가격은 1억 원이었다. 권 전 회장이 처음 사 온 신주인수권 가격(278원)보다 낮은 가격이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2013년 6월 27일 김 여사는 타이코사모펀드에 43만6,793주를 주당 358원(총 1억5,637만 원)에 넘긴다. 7개월 사이 김 여사는 5,637만 원의 시세차익을 냈다. 이런 방식으로 신주인수권은 김 여사를 포함해 1차 주가조작 공범으로 지목된 블랙펄인베스트먼트의 임원 민모씨 등을 거쳐 대부분 타이코사모펀드로 넘어갔다.

빠지던 도이치 주가는 2013년 1월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타이코사모펀드를 비롯한 신주인수권 소유자는 2013년 6월 27일부터 2014년 11월 26일 사이 616만6,413주의 신주인수권을 주당 3,892원에 신주로 전환했다. 이후 타이코사모펀드는 2014년 3월 26일 92만9,887주를 5,377원에, 2017년 7월 14일 234만701주를 5,880원에 각각 매도했다. 총 차익은 60억3,400만 원이다. 나머지 289만5,825주는 누가, 얼마에 팔았는지 공시되지 않았다. 타이코사모펀드의 매도가 평균인 5,629원을 적용하면 이들 역시 50억 원가량의 차익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12억 원에 사 온 신주인수권으로 4, 5년 만에 110억 원의 수익을 거둔 셈이다.

안 전 청장은 "1차 주가조작 때 연루된 김 여사와 민모씨 등이 신주인수권의 흐름에 등장하는 것만 봐도 새로운 주가조작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돈의 흐름이 결국 어디로 갔는지를 수사해 보면 누가 주가조작의 핵심 인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하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