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교보문고 기준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이지만, 대상을 이른바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로 바꾸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소설가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이 1위에 자리한 것.
‘모순’은 1998년 출간 당시에도 베스트셀러였지만,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보다 나이가 어린 세대가 열광하는 것은 돌출적 현상이다. 반짝 유행도 아니다. 2020년 이후 베스트셀러에 계속 이름을 올리며 스테디셀러로 거듭났다. Z세대는 왜 오늘날 ‘모순’을 읽을까. 독자 6명의 얘기를 들어봤다.
‘모순’은 25세의 주인공 안진진이 인생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선언하며 시작한다. “빈약한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스물다섯, 결혼 적령기라는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대사처럼, 안진진의 고민은 나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 때문에 ‘모순’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여성주의와 맞물려 20대 추천 도서로 꼽혀왔다. 최혜리(25)씨는 “지난해 온라인에서 ‘스물다섯에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는 글을 봤다”며 “마침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고, 친구들과 언니들에게 ‘모순’을 꼭 읽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신예린(22)씨는 “여러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20대 초반에 읽어서 그런지 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모순’을 구입한 10명 중 6명은 안진진과 비슷한 나이의 2030세대 여성들이었다.
26년의 시차만큼 안진진과 오늘날 Z세대는 다르다. 안진진은 자신의 나이를 ‘결혼적령기’라 여기며 결혼 상대를 고르는 데 골몰한다. ‘모순’은 남편을 찾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 인간과 그의 선택을 이루는 크고 작은 요소들을 촘촘하게 꿰어낸다. 정해은(25)씨는 “옛날 소설이라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인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안진진이 왜 그런 모순을 택하게 됐는지에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군대에서 '모순'을 접했다는 이민석(23)씨도 “아주 흔한 보통 사람들의 사랑과 인생을 담고 있다”며 “친구의 연애 상담을 해주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안진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가 그린 삶의 본질은 20년이 지나서도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인터뷰 없이 작품으로만 독자와 만나는 양귀자는 ‘모순’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 소설을 쓰면서 단 한 장도 수월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없었다는 그가 독자들 역시 애착을 갖길 바란 셈이다.
작가의 소망대로 ‘모순’은 한 차례 읽고 나서 필사하며 다시 읽는 책으로도 꼽힌다. 최재훈(24)씨는 “‘모순’은 내가 태어나기 전 쓰였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소설”이라면서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등 여러 문장을 외우고 있다”고 했다. 양귀자라는 작가에게 가는 문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채연(23)씨는 “긴 여운이 남는 ’모순’을 읽고 팬이 되어서 양 작가의 다른 책도 다 사서 읽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