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른바 ‘트럼프 대세론’에 불이 붙으며 자본 대이동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후보 사퇴를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 수혜주는 자본이 대거 유출되고 있는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수혜주로 분류되는 업종에는 돈이 쏠리고 있다. 공화당 테마형 ETF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민주당 테마형 ETF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아직 대선까지는 3개월 이상 남았지만 시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는 대한민국에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의 압박이 대단히 높아질 수밖에 없을뿐더러,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입으로만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해온 ‘박쥐’ 같은 한국에 대한 응징이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자유, 한미동맹 강화를 입버릇처럼 이야기해왔지만, 서태평양에서 중국을 겨냥해 실시된 미국 주도의 군사 협력 활동에는 참여를 거부해왔고,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 구축에도 협력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직도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이 한국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부르짖고 있기도 하다.
미 공화당은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 정책 기조에 맞춰 정강정책을 대폭 뜯어고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은 물론, 재집권 시 외교안보 요직 기용이 유력시되는 인사들도 동맹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공개 발언들을 늘려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미 공화당은 미국의 동맹정책이 냉전 시절 형성된 ‘자치안보교환동맹’에서 ‘국력집합동맹’으로 바뀌어야 하고, 반드시 상호호혜적인 관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동맹국들은 국방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고, 미국과 이익을 공유하며 공동의 적에 함께 맞서 싸울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민주당도 똑같다. 북한·중국·러시아·이란 등 이른바 권위주의 세력이 군비를 증강하고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지금, 이에 맞서는 자유민주주의 진영 구성 국가들도 각자 제 몫은 하면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 정치권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최근 1, 2년 사이 국방예산을 크게 증액하고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 정치 갈등이 극에 달한 한국은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후 유럽에서는 향후 수년 내에 러시아가 침공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가까운 대만에서도 2027년을 전후해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경고가 쇄도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그저 ‘남의 일’ 취급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발표한 분석 보고서에서 대만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3%가 감소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지만, 놀랍게도 이런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한국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내년 초부터 미국의 압박이 본격화될 경우, 한국은 말 그대로 대혼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새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한미동맹을 재고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유럽에서도 트럼프 재집권 시 미국이 NATO를 탈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마당에 한미동맹은 굳건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심각한 인지부조화다. 한국은 “외국 정부와 맺은 협정이 신성하다는 생각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엘브리지 콜비 전 부차관보의 발언을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언급하며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근 발언도 흘려들을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미국의 새 정부에 한미동맹을 유지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한미동맹이 깨지는 것은 물론, 한미동맹이라는 기반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 번영의 탑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물론 현재 한국 정부 상황에서 미국의 새 정부가 요구할 급격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국방비 증액, 한반도 밖 역할 확대는 불가능의 영역이다. 여소야대 구조 속에서 여야 정치적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고, 야권은 물론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부여당 인사들 중에서조차 중국과 각을 세우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솟아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체제 붕괴 직전의 상황에서도 핵무기라는 비대칭 무기를 완성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한국에도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미사일’이다.
냉전 시절 모스크바에서 고작 1,800㎞ 떨어진 서독은 미국에 매우 귀한 전진기지였다. 미국은 이곳에 유사시 10분 안에 모스크바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퍼싱-II’ 탄도미사일 108기를 배치해 소련을 압박했고, 소련은 이 압박에 대응할 수단을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붕괴됐다. 한국은 당시 서독보다 더 좋은 입지를 갖고 있다. 베이징에서 1,000㎞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의 ‘다크이글’과 같은 중거리 타격 무기 주한미군 배치를 유치하는 정도의 조치만으로도 미국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현재 실전배치 준비 중인 ‘현무’ 탄도미사일을 이용해 중국에 대한 억제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국의 경기·충청 해안에서 중국 해군 핵심 거점인 다롄·칭다오까지는 500㎞ 정도다. 현재 실전배치돼 있는 사거리 500㎞·탄두중량 1톤의 현무-IIB나 사거리 800㎞·탄두중량 2.5톤의 현무-IV-1 사정권 안이다. 이러한 미사일들을 증산(增産)하고, 여기에 K221 이중목적개량고폭탄(DP-ICM)을 채워 넣은 확산탄두를 탑재할 경우, 이 미사일들은 중국을 상대로 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K221은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에 들어가는 M74 자탄과 달리 각각의 탄에 성형작약탄이 적용돼 장갑 관통 능력을 갖고 있는 가공할 무기다. 공중에서 폭발해 지상으로 떨어지는 수백 개의 자탄 하나하나가 70~120㎜ 두께의 장갑판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물론, 관통 후 소이(燒夷) 효과까지 낸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ATACMS 미사일의 탄두 중량이 214㎏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5~12배의 탄두 중량을 갖는 현무 미사일에 K221을 가득 채워 발사할 경우 그 위력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 될 것이다. 현재 개발 완료 단계에 있는 탄두중량 8~9톤인 현무-V를 기반으로 대함 확산탄을 만들 경우 그 위력은 중국에 공포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위력의 현무-IV 미사일은 1발에 4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대중국 작전용으로 100발을 찍어내도 현재 국방예산 수준에서 감당 가능한 비용이라는 말이다.
유사시 한국이 다롄·칭다오 해군기지는 물론, 서해·동중국해에 있는 중국 함대를 상대로 대량의 현무 탄도탄 공격을 가할 경우, 중국의 현존 방공무기들로는 이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 작은 자탄들은 중국 군함들을 격침시킬 수는 없겠지만, 레이더와 센서 등 핵심 장비들을 파괴해 떠다니는 고철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유사시 대만을 집어삼키고 미국을 꺾기 위해 중국이 수십 년간 공들여 건설한 대양함대가 한국의 일격에 초토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이것을 사용할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낼 경우, 미국의 새 정부가 한국을 어떻게 평가할지, 중국이 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바꿀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이러한 탄도탄은 미국의 새 정부에 한국이 대단히 매력적인 동맹임을 각인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됨과 동시에, 중국을 압박해 대만 침공을 억제하고, 냉전 때 ‘퍼싱-II’ 미사일이 그랬던 것처럼 미·중 패권 경쟁의 역사 자체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이미 수단을 손에 쥐고 있는데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우리가 이 수단을 휘두르면 진정한 글로벌 중추국가로 부상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한미동맹은 물론 국가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