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편의점인가, 피자집인가···'5만 점포' 시대, 편의점은 무한 변신 중

입력
2024.08.01 06:00
17면
GS25, 점포 내 '고피자' 입점해 운영
600곳서 오븐 설치, 주문 즉시 조리
세븐일레븐 '구슬 아이스크림' 매장
CU타워팰리스점 면적 20% '컬리존'
기존 PB상품 개발로는 성장 어려워
'점포 대형화+여러 브랜드' 흐름 지속


이곳은 편의점인가, 피자집인가. 19일 서울시 강남구 GS25 역삼홍인점은 바깥에서 봤을 때 일반 편의점과 달랐다. 유리창에 'GOPIZZA' 상호와 함께 큼지막한 피자 사진이 붙어 있었다. 고피자는 1인용 피자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업체. 점포로 들어가니 계산대 바로 옆에 고피자 매장이 있었다. 피자는 '미트치즈' '트리플치즈' '포테이토&베이컨' 세 가지로 한 판당 7,900~8,500원. 모두 주문했다. 편의점 직원이 초소형 오븐에 냉동 피자를 집어넣었다. 5분 만에 피자가 박스에 담겨 나왔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기자는 10여 년 전 사회초년생 시절, 자취방에서 혼자 각종 브랜드 피자를 시켜 먹으며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보냈을 정도로 '피덕'이었다. 음주와 과로로 위가 망가진 5년 차 때까지는 '1주 1피' 생활을 꾸준히 이어갔다. 지금은 소화 문제로 피자를 즐겨 먹지 않지만 피자 수백 판을 맛본 혀는 아직 현역이었다. 저가, 냉동 피자를 칭찬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섯 조각으로 잘라진 피자를 집어 크게 베어 물었다. 어라? 냉동 피자 특유의 질기고 딱딱한 도(dough)가 아니었다.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냉장 치즈의 쭉 늘어나는 느낌은 없었지만 치즈 양은 적당했다. 토마토소스 맛은 평범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합격점이었다. 특히 포테이토&베이컨 피자는 토핑과 소스, 치즈의 밸런스가 좋았다. 점심에 감바스와 이베리코 스테이크를 먹고, 간식으로 샌드위치, 타코 등을 주워 먹은 터였다. 그런데도 피자 세 조각을 삼켰다. 맛있었다.

이런저런 할인을 받아도 브랜드 피자 한 판에 3만 원은 줘야 하는 세상. 야밤 출출할 때 고피자 한 판, 맥주 한 캔 정도면 만 원에 그럴싸한 '피맥'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서울 GS25 본사에서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상품 전시회가 열렸을 때도 고피자를 맛본 점주들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그로부터 넉 달 만에 전국 600여 매장이 오븐을 설치해 피자를 굽고 있다. 잘되는 매장은 하루 스무 판씩 팔린다. GS25는 스파게티 같은 사이드 메뉴도 판매를 검토 중이다.



하나의 가게 안에 다(多)브랜드가 들어오는 '숍인숍(Shop in shop)'이 편의점 업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 편의점 수가 5만여 개에 달할 정도로 포화 상태다. 할인 행사를 하거나 자체 상품(PB)을 추가하는 정도로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아예 피자, 아이스크림 같은 외식업계 매장을 점포 안으로 들여오는 식으로 수익 창출에 나서고 있는 것. 업계 관계자는 "피자를 예로 들면 냉동 피자, PB 피자 같은 기존 상품 라인업을 늘리기보다 '주문 즉시 굽는 피자' 같은 새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매출이 늘어난다"고 했다.


'으른의 맛' 구슬 아이스크림 매장이 편의점에?


최근 세븐일레븐이 구슬 아이스크림 브랜드 '디핀다트코리아'와 손잡고 6개 관광지 편의점에 특화 매장을 들여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도 전국 편의점 어디서나 63㎖ 용량의 구슬 아이스크림 제품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전용 매대에서, 최대 2XL(650㎖ 음료 컵) 사이즈로, 직원이 여섯 가지 맛의 구슬 아이스크림을 담아주는 곳은 세븐일레븐 특화 매장뿐이다.

타깃은 2030세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2030을 중심으로 구슬 아이스크림이 '으른(어른)'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어서다. 가격이 비싸 어릴 때 부모를 조르고 졸라야 사 먹을 수 있었던 구슬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어른이 된 듯한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 SNS에 1만 원이 넘는 2XL 구슬 아이스크림 사진과 함께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샀다)" "성공한 어른의 맛" 글이 올라오는 배경이다. 서울의 몇몇 구슬 아이스크림 매장은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다. 이에 가까운 편의점에서도 '으른'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세븐일레븐 전략이다.



실제 테스트 베드 격인 특화 매장 여섯 곳의 10~16일 구슬 아이스크림 매출은 전월(6월 4~10일)보다 20% 올랐다. 이에 세븐일레븐은 대전은행점, 이천관광대점 등 2030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도 특화 매장을 도입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100여 개까지 매장을 늘리는 게 목표다.


연어회·폭립 등 '컬리템' 파는 CU


외식업체만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다. CU는 2023년 12월 컬리와 제휴해 서울시 강남구 타워팰리스점을 컬리 특화 편의점으로 개편했다. 매장 내 마련된 '컬리존'에서는 정육·수산물 등 신선 식품은 물론 냉동 식품·밀키트까지 판매한다. 노르웨이 생연어회 같은 온라인 인기템이 잘 팔린다고 한다. 이 매장의 식재료 관련 매출은 일반 편의점으로 운영할 때와 비교해 5.8배 늘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업체들도 거미줄처럼 깔린 편의점 점포망을 통해 인지도와 매출을 높일 수 있어 숍인숍은 편의점, 업체 모두 윈윈"이라며 "편의점 규모를 대형화해 숍인숍, 특화 매대 운영 등의 형태로 다양한 콘셉트의 상품을 취급하는 흐름이 계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박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