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비자발적 전망도 어둡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연구진은 2017년 7월 25일 발표한 논문에서 1973년 정액 1ml당 9,900만 개였던 정자 농도가 2011년 4,700만 개로 한 해 평균 1.4%씩 52%나 희석됐고, 정액의 총정자수도 60% 감소했다고 밝혔다. 호주와 뉴질랜드, 유럽, 북미 남성 4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었다.
고대 로마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정액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농축액이라 여겼고 그 속에 ‘씨앗’도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인류는 광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17세기에야 정자를 발견했고 1827년 난자가 확인되면서 비로소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수정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시작했다.
히브리대 연구를 두고 학계의 이견이 적지 않았다. 연구 기법과 샘플의 문제를 제기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연구진은 2022년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까지 포괄한 세계 53개국 대상 추가 연구에서도 1973~2018년 사이 정자 농도는 51.6%, 총정자수는 62.3% 격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2000년대 이후만 따지면 정자 농도는 무려 연평균 2.64% 감소했다.
통상 정자 농도가 1ml당 4,000만 개 이하면 정자감소증으로, 400만 개 미만이면 불임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정자부족증(Oligospermia)으로 진단된다.
정자 감소의 원인을 두고 학계는 아직 확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약 등 화학물질로 인한 내분비계 이상설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고 흡연과 운동부족 등 일반적인 건강-신체기능 저하의 한 현상이라고 짐작하는 이들도 있다.
‘비자발적 멸종’이라고 했지만, ‘미필적 고의’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뭐가 됐든 그 원인들은 인류의 의도하지 않은 선택에 기인한 것일 테니 말이다. 지구상의 어떤 생물도, 알려진 바 스스로 생식능력을 파괴하거나 포기함으로써 멸종한 종은 없다. 인류가 그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