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있으면 1000만 원 무릎주사"... 실손 개혁이 의료 개혁

입력
2024.08.01 07:00
8면
[전환점에 선 K의료: ③의료수요 감축 반드시 병행돼야]
실손보험이 비급여 과잉진료 부추겨
GDP 대비 의료비 OECD 평균 넘어서
비급여 많은 '피안성' 몰리는 현상까지
"비급여 항목 체계화·실손 보장 축소해야"

편집자주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며 의료개혁 기치를 올린 지 6개월. 의대 정원이 내년부터 대폭 늘어나 의사 인력 부족 해소의 전기가 마련됐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은 의료체계를 보다 지속가능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내외 의료현장 취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의료개혁 성공 조건과 보완 과제를 점검한다.

60대 박모씨는 무릎이 쿡쿡 찌르는 통증에 정형외과를 찾았다가 예기치 않게 1,000만 원이 넘는 시술을 받게 됐다. '실손 보험이 있냐'는 의사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자마자 의사는 줄기세포를 활용한 새로운 치료 기법을 소개했다. 주사 한 번 맞으면 무릎 연골이 재생돼 관절 기능이 개선되고 통증도 완화한다는 것이었다. 가입한 실손으로 대부분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어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도 더해졌다. 박씨는 "잘 모르지만 일단 돈이 안 든다니까 시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 국민 4,000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 보험이 비급여 과잉 진료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병원은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 홍보에 집중하고, 환자는 '어차피 실손에서 보전해 준다'는 인식하에 의료 쇼핑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국민의 의료비 지출이 덩달아 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가고, 비급여 항목이 많은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으로 의사가 쏠리는 문제까지 발생한다. 기형적 비급여 실손 보험의 개혁이 의료 개혁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3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보험사의 실손 보험 지급보험금은 14조813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12조8,868억 원)과 비교하면 8.5%(1조1,945억 원) 늘었다. 이에 비해 지난해 가입자 수는 2022년 말(3,997만 명) 수준으로 큰 변화가 없다. 즉 1인당 실손 보험 지급액이 늘었다는 뜻이다. 이는 비급여 시장이 꾸준히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실손 보험 지급보험금 중 비급여 항목 규모는 8조126억 원으로 2021년(7조8,742억 원), 2022년(7조8,587억 원)에 이어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실손 보험 가입자의 약 4%가 전체 지급보험금의 절반 이상(54.7%)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히 일부의 과잉 청구가 전체 보험료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5년간 실손 보험료는 58%나 올랐다.

과잉 의료로 인한 국민 의료비 역시 급증세다.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 의료비 지출은 9.7%(120조6,000억 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9.2%)을 처음 넘어섰다.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 향후 진료비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2~2031년 국민건강보험 수입과 지출의 예상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6.4%, 7.4%로,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점차 마를 전망이다.

"규제 사각지대 비급여, 표준가격 정해야"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비급여 관리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진료 대상, 진료 수가 등 급여 의료 항목은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반면 비급여 항목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2021년 보건복지부가 병원이 환자에게 사전에 비급여 항목과 진료비용을 설명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과잉 진료를 막는 데 큰 효과는 없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는 "현행 비급여 관리제도는 일부 항목, 일부 기관, 일부 기간만 조사하기 때문에 전체 비급여 대상 목록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면서 "진료비 청구 시 비급여를 포함한 총진료비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비급여 항목의 표준가격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비급여 의료까지 포함한 의료 수가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독일에선 1965년부터 의료인이 비급여 진료를 청구할 경우 의료 행위의 난이도, 수행 시간, 실행 상황 등을 고려해 공적 건강보험에 가중치를 두는 방식으로 적정 수가를 책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공적 건강보험 수가가 1이라면 비급여 의료 항목은 1배에서 최대 2.3배의 가중치만 설정할 수 있다. 2.3배를 초과할 때는 의료인이 이에 대한 이유를 서면으로 설명해야 한다. 최신 의료 기술은 적용 전에 의료진과 환자 및 보험사의 합의가 있어야만 3.5배 이상의 수가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백내장 수술에 다초점 렌즈 삽입... "혼합진료 제한해야"

실손 보험의 보장 한도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비급여 주사제 등 문제가 되는 비급여 항목은 보장 금액이나 한도를 일부 제한해 도덕적 해이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급여·비급여의 자기부담률 상향을 통해 과잉 의료 이용 유인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잉 진료 배경에 혼합진료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혼합진료란 비급여 진료를 하는 의사가 관련 급여 진료를 유도해 제반 검사나 입원료 등을 건강보험료에 청구하는 행위다. 예컨대 백내장 수술(급여)을 할 때 다초점 렌즈 삽입(비급여)을 같이 시술한다거나, 물리치료(급여)를 받을 때 도수치료(비급여)를 함께 끼워 파는 식이다.

혼합진료를 원천 금지하는 일본은 비급여가 일부 포함된 의료행위는 모두 비급여로 처리해 전액 환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는 "질환 특성, 중증도, 급여 진료와의 대체 가능성, 남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필수성이 있는 경우에만 혼합진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하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