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소도시 먀오리현에 들어서자 하늘색 바다 위로 풍차 수십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먀오리역에서 내려 다시 차를 타고 20분을 달려 도착한 '반톈랴오 희망봉'은 드넓은 해수면 위에 늘어서 있는 풍차를 볼 수 있는 관광지였다. 전망대에 올라선 사람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십 km에 걸쳐 줄 서 있는 풍력발전기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35도 가까운 무덥고 습한 날씨에도 일년 내내 평균 초속 8.9m 세기의 바닷바람이 불고 아무 장애물이 없어 풍력 발전에 안성맞춤으로 꼽히는 이곳은 대만 정부와 민간 기업이 야심 차게 추진해 세운 '포모사 풍력 2단지'다.
글로벌 해상풍력 전문 개발회사인 코리오제너레이션(Corio Generation)은 협력사들과 함께 2023년 5월부터 8메가와트(MW)급 풍력발전기 총 47기를 세우고 376MW의 해상풍력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먀오리 주난진과 후롱진 앞바다에서 4∼10km가량 떨어진 포모사 2단지는 약 38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며 연간 탄소 배출 감축량은 70만 톤(t)에 달한다.
사실 대만과 한국은 닮은꼴이다. 두 나라 모두 수출로 먹고살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3만 달러 초반이다. 반도체 등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삼성전자가 코스피(KOSPI)에서 약 20%를 차지하듯 대만 TSMC의 대만 자취안지수 비중도 약 24%다. 북한과 분단돼 사실상 '섬'처럼 고립된 한국의 상황처럼 대만도 중국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진 작은 섬나라라는 점, 자원이 없어 에너지의 97%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부분도 비슷하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정책,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에 가장 핵심적 수단인 해상풍력 정책에 있어 대만은 '선도국', 한국은 '후진국'이다.
대만 정부의 해상풍력 정책이 한국과 가장 뚜렷하게 다른 부분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일관성 있게 끌고 간다는 점이다. 대만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대만 경제부 산하 에너지청에서 도맡는다. 전력시장과 발전 사업, 재생에너지 사업뿐 아니라 인허가 관련 역할도 책임진다. 청셴 첸 대만 에너지청 에너지기술본부장은 지난달 27일 타이베이시 경제부에서 기자와 만나 "에너지청은 여러 민간 기관과 정부가 소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며 "부처마다 의견이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규정을 명확하게 판단해 (발전) 사업자들이 원활하게 사업을 진행하게 해줘 시간 낭비 없이 빠르게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 정부는 2009년 '재생에너지 개발법'을 제정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계획대로 이어지도록 했다. 정부가 직접 입지를 찾아 사업가능 지역을 추리고 설치 계획을 세우면 사업자가 계획서, 발전단지 정보, 계통 접속 정보, 환경영향평가 등을 제출해 입찰 과정을 거친 뒤 최종 사업자를 뽑는다. 청셴 본부장은 "사업자들이 입지를 찾아 일일이 확인하면 1~3년 정도 걸릴 것"이라며 "시간과 자원 낭비가 없도록 정부가 설치 지역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덕분에 사업자는 빠르게 사업 추진이 가능할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해상풍력 사업은 넓은 바다에서 진행되는 탓에 어민, 해양 물류 사업자, 양식업자 등 여러 주체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한국에선 이해관계자 대상 사업자가 직접 따로따로 협의와 보상을 진행하다 보니 합의점을 쉽게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사업자가 인허가나 주민 수용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땐 대만 에너지청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청셴 본부장은 "정부는 어민들에게 제공할 보상의 기준치를 함께 알린다"며 "어민들이 바라는 보상치가 합리적인지 일찍 판단할 수 있고 절차에 따른 인허가 과정을 함께 지켜보면서 사업자들이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해상풍력 확대에 발목을 잡는 송전망 이슈도 대만에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업 계획단계부터 전력망 연결이 원활한지 확인해야 건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가 사업 계획을 세울 때 전력망 전체에서 허용할 수 있는 용량 이하로만 설비 용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업자는 계통 연결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면 한국은 풍력발전기가 생산한 전력을 실어 나를 송전망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 허가 절차가 진행된다. 최근에는 호남 지역 송전망 등 전력계통이 포화돼 5개 단지 중 4개 단지가 사업 완료 때까지 전력계통 연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으로 불허 결정이 났다. 전력계통 보강을 한국전력이 독점하지만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이 언제 정상적으로 송배전망 보강을 진행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만큼 사업자 입장에선 사업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차이 치멍 대만전력공사(타이파워) 부사장은 지난달 2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해상풍력 사업 초기 단계부터 계통 확보를 위해 본사의 검토 및 승인이 있은 뒤에야 부지 입찰 신청을 받는다"며 "설치 허가 이후엔 사업자가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등을 통해 민간 기업에 전력을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도 함께 추진된다"고 말했다.
그 결과 대만은 해상풍력 확대 정책에 있어 1단계(2016~2020년), 2단계(2021~2025년)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3단계가 시작되는 2026년부터는 10년 동안 15GW를 더해 2035년까지 20.6GW 규모 해상풍력을 개발할 계획이다.
글로벌 해상풍력 균등화 발전원가(LCOE)는 킬로와트시(kWh)당 102원 수준이다. 한국의 위치는 어딜까. 본보는 20년 동안 에너지원별 LCOE를 연구한 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의뢰해 2023년, 2035년, 2050년 등 시점에 따른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 및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한국의 해상풍력 LCOE는 kWh당 238.6원으로 글로벌 가격의 2.5배 수준에 이른다.
해상풍력 확대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조건은 난개발과 사업 지연을 최소화해 사업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 그리고 해상풍력의 블레이드, 터빈, 발전기, 인버터 등 핵심 부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인프라 구축을 함께하느냐에 달렸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국내 해상풍력 시장이 성장한다면 한국의 해상풍력 LCOE는 2035년 227.5원, 2050년엔 215.2원 등으로 여전히 글로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주요국의 실적 전망치를 활용해 만약 국내 풍력 설비 비용이 세계 풍력 설비 비용만큼 떨어진다면 2035년 159.5원, 2050년 103.4원으로 절반 이상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즉, 국내 해상풍력 시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우리나라도 '값싼' 해상풍력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하는 태양광 발전에 있어 한국의 위치는 어딜까. 2023년 현재 태양광 발전의 LCOE는 kWh당 122.1원으로 이미 석탄(128.9원)과 LNG(140.5원) 발전보다 낮다. 태양광 LCOE는 매년 내려 2035년(99.4원)에는 100원 이하로 떨어지고 2050년에는 원자력(98.3원)을 제치고 가장 저렴한 발전원(88.4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3년과 비교해 설비비용이 2035년에는 21%, 2050년에는 31% 하락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연평균 1.4%씩 감소하는 셈이다. 분석에는 한국에너지공단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제도에 나와있는 태양광 실적 등을 활용했다. 2002년 발전차액지원제도(FIT) 도입으로 본격적인 태양광 보급 정책이 시행되면서 2022년까지 약 14만 개(10~100kW)의 태양광발전소 설비 비용 추세를 파악했다. 여기에 제10차 전기본의 2036년까지 미래 누적 보급 전망치를 반영한 학습 효과 모형으로 설비 비용 하락률을 내다봤다.
태양광은 시장 잠재량도 넉넉한 편이다. 설비 용량으로는 369GW, 연간 495TWh(테라와트시)를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22년까지 보급된 전국 태양광 설비용량은 24.3GW, 연간 발전량은 30.7TWh에 그쳤다.
이는 경제성이 충분한 입지조차 각종 규제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농형 태양광이 대표적이다. 한국환경연구원(KEI)에 따르면 발전 효율 17.5%인 일반 태양광 패널을 기준으로 전국의 농업진흥구역(6,960㎢)에 설치 가능한 영농형 태양광 발전 규모는 301GW다. 하지만 2021년까지 설치된 용량은 65개소, 3.4MW로 기업이나 기관의 연구 목적이 대부분이다.
이런 지지부진한 상황은 규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현행 농지법상 영농형 태양광의 일시사용허가 기간은 최대 8년으로 모듈 수명 25년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한 채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실정이다. 2023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영농형태양광 보급 확대를 위한 정책 방안: 경제성 측면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영농형 태양광의 사용허가 기간이 8년인 현재로선 발전 수익을 통한 총편익이 총투자비용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사용허가 기간이 20년으로만 연장돼도 100kW기준 약 8,790만 원, 1MW 기준 9억1,200만 원의 경제성을 높이는 효과가 생겼다.
농지법의 한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영농형 태양광 실증이 시작된 2016년 꾸준히 나왔지만 여태 해결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2013년 관련 제도 마련 이후 꾸준히 농지전용허가 제도를 개편하면서 영농형 태양광 설치가 꾸준히 늘었다. 현재 일본은 영농형 태양광을 대상으로 최대 10년의 일시 전용허가를 내주고 이후 갱신도 가능하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13년 102개소였던 영농형 태양광 허가 건수는 2020년 총 3,472개소로 늘었고 총설치면적도 872.7헥타르(ha·약 264만 평)이다.
제도가 갖춰진 덕에 일본 기업들은 최근 RE100 달성을 위해 영농형 태양광을 활용하고 있다. 1일 찾은 일본 지바현 소사시의 영농형태양광법인 '시민에너지지바'의 발전소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3만2,000㎡(9,680평), 1,000kW 용량의 메가솔라셰어링 발전소를 비롯해, 파타고니아(440kW), 론허먼(49.9kW) 등의 기업이 직접 투자한 발전소도 있었다. 기업이 직접 투자로 발전소를 지은 뒤 전력구매계약(PPA)을 통해 독점 공급을 받는 형식이다. 시민에너지지바는 발전소 운영과 동시에 콩 등 작물을 재배하면서 수익을 얻는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채우겠다는 목표의 글로벌 캠페인이다. 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클라이밋그룹'에서 발족했으며 정부가 강제한 것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된다.
히가시 미츠히로 시민에너지지바 대표는 "RE100등 재생에너지 조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농형 태양광발전소 증설에 직접 투자나 융자를 지원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며 "덕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는 물론 소사시 지역 주민이 수익을 거두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2050년 RE100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인터랙티브에서는 지역별 전력수급상황과 앞으로의 송전선로 설비계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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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획물은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