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회보장제 차별할 수 없어"... 동성결합, 사회안전망 첫 편입

입력
2024.07.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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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동성동반자 권리 첫 인정]
전원합의체 "이성 사실혼과 다르지 않아"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 동반자도 이성 동반자(법적부부+사실혼)처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민법상으론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커플을 사회보장제도 안으로 편입시킨 역사상 첫 확정판결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8일 소성욱(33)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다수 의견으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음에도 동성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덧붙였다.

소씨는 2013년부터 김씨와 교제 끝에 2019년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초 건강 문제로 소씨가 퇴사하게 되자 김씨는 건보공단에 '동성 부부'임을 밝힌 뒤, 피부양자로 신고가 가능한지 문의했다. 담당자가 "피부양자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고 안내해 소씨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피부양자로 보험 혜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해 10월 담당자는 "착오였다"며 피부양자 자격을 소급 상실시켰다. 소씨의 지위는 지역가입자로 바뀌었고, 보험료가 새로 청구됐다. 이에 소씨는 건보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 "사실혼과 다를 근거 없어"

쟁점은 △사전 통지절차를 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 △동성 동반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해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한 실체적 하자가 있었는지였다. 특히 민법상 동성 혼인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서 법원이 동성 동반자의 실체를 인정할지가 관건이었다. 1심은 절차·실체적 하자가 없다고 봤지만, 2심은 이를 뒤집었다. 동성 동반자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는 판단이었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건보공단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주체로, 평등원칙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해 그 차별대우의 위법성이 더 넓게 인정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이 전통 가족법제가 아닌 기본적 사회보장제도인 점을 고려할 때,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직장가입자와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사실혼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것을 보면, 동성 동반자 역시 같은 이유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문제와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 범위를 해석·확장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판결이 곧 동성혼을 인정한 건 아니라는 취지다.

"동성동반자 인정 첫 판결" 환영

대법원의 이날 판결은 동성 동반자도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선고 직후 소씨는 "오늘의 기쁜 소식이 징검다리가 돼 (동성 부부의) 혼인 평등도 인정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씨의 손을 꼭 잡은 배우자 김용민씨는 "저희는 11년을 함께 한 동반자이자 앞으로도 함께 할 배우자"라면서 "법원에서 인정받아 행복하다"며 눈물을 내비쳤다.

한편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은 반대의견으로 "배우자는 이성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하는데, 동성 결합에는 혼인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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