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지난해 11월 망명해 국내로 입국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물밑 협상이 한창이던 때다.
16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리일규 참사는 지난해 11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국내로 망명했다. 리 참사는 쿠바에서 두 차례 근무한 북한의 대표적 남미통이다. 2019년부터 쿠바 주재 정치 담당 참사를 지내며 지난해까지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7월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려다가 적발돼 억류될 당시에는 쿠바에서 급파돼 당국자로 협상에 나섰다.
리 참사는 2016년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2019년 조성길 주이탈리아대사관 대사대리, 류현우 주쿠웨이트대사관 대사대리에 이어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공식 확인된 4번째 탈북 외교관이다. 참사는 북한 재외공관에서 대사, 공사 다음 직책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교관·해외주재원·유학생 등 엘리트 계층 탈북민은 10명 내외로 2017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북한을 탈출하는 엘리트가 늘고 있는 것이다. 리 참사와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주재 북한 외교관 일가족도 우리 공관에 망명 의사를 밝히고 미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다수 탈북민들은 코로나19 이후 북한으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단속과 압박이 세지면서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리 참사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23년 7월 중순부터 탈북을 심각하게 고민해 11월 초 실행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표창장까지 받은 그는 외무성 내부 부정부패와 상급 간부의 뇌물 요구, 자신의 질병치료 거부 등을 이유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외에 한-쿠바 수교 움직임이 그의 탈북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태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리일규 참사가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수행한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한국과 쿠바 사이의 수교 저지 활동"이라며 "평양의 지시를 집행해 보려고 애써 보았으나 쿠바의 마음은 이미 한국에 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고 올렸다. 태 전 의원은 리 참사에 대해 "김정일, 김정은도 알아주는 쿠바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리 참사는 2019년 탈북한 류현우 대사대리와 15년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며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북한 외무성이 공개한 조직도를 보면 중동·중남미 담당 외교관은 '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국'에서 근무한다. 정보당국의 합동심문을 받고 하나원을 거친 그는 최근 활동이 자유로워진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리 참사는 인터뷰에서 한성렬 전 미국 담당 부상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인 2019년 2월 중순 '미국 간첩' 혐의로 외무성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총살됐다고 주장했다. 또 리용호 전 외무상은 주중대사관 뇌물 사건에 연루돼 2019년 12월 가족이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리용호가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는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대해 "숙청 여부는 확인되나 처형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