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샴푸 논란 후 탈모샴푸로 재기한 카이스트 교수 "다음 목표는 미용실서 모발이식"

입력
2024.07.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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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샴푸 유해성 논란으로 판매 금지
폴리페놀 달리 활용해 탈모 개선으로
"다수에 도움 주는 과학" 신념은 여전
기존 한계 넘는 모발이식 상용화 꿈꿔

“의료용 접착제에서 시작해 염색 샴푸, 탈모 개선 샴푸까지 개발하게 됐네요. 과학은 특정 소수가 아닌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신념에 소비재에 집중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이해신(50)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화학과 석좌교수는 올해 4월 교내 창업 스타트업인 '폴리페놀팩토리'를 설립하고 탈모 개선과 모발 볼륨감을 제공하는 샴푸 제품을 출시했다. 이 샴푸는 품절이 이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일본과 미국, 캐나다 진출도 앞두고 있다.

대학원 시절부터 파고든 접착성 물질

16일 서울 용산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이 교수는 “대학원 시절부터 파고든 연구 분야가 접착 기능이 큰 물질인 ‘폴리페놀’”이라며 “폴리페놀로 머리카락이 모낭에서 쉽게 빠지지 않도록 붙잡는 게 탈모 개선 샴푸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폴리페놀을 활용해 만든 특허 성분이 들어 있어 모발 굵기도 두껍게 해 전체적으로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보이게 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우리 제품을 2주 정도 쓰면 탈모 현상이 70% 정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샴푸에 관심을 기울였던 건 아니다. 그가 상용화에 가장 먼저 나섰던 건 의료용 접착제였다. 혈관이나 손가락이 절단된 경우 의료용 바늘과 실을 이용해 봉합은 가능하지만 액체 같은 접착제를 이용해 붙이는 건 불가능하다. 이 교수는 홍합이 폴리페놀을 사용해 물속에서 바위에 붙는 것에 착안, 2010년 ‘이노테라피’라는 벤처 회사에서 의료용 접착제 개발에 몰두했다. 찢어진 혈관이나 손상된 장기를 수술 없이 봉합할 수 있는 기술을 직접 상용화하고 싶었던 꿈은 2019년 회사가 상장하면서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당시 대표이사의 매각 결정으로 기술 개발에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며 이 교수는 아쉬워했다.


"모낭 없는 머리카락도 심을 수 있다"

의료용 접착제 상용화는 못 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폴리페놀이 특히 단백질에 가장 잘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단백질이 가장 많은 곳이 모발이라, 이 교수는 자연스럽게 헤어용품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 교수는 “폴리페놀은 공기에 노출되면 색이 변한다"며 “가장 먼저 염색 샴푸 개발에 나선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2010년 내놓은 염색 샴푸는 기존의 독한 염색약을 쓰지 않고 머리를 감는 것만으로도 염색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해당 샴푸에 함유된 특정 성분(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결국 판매가 중단됐다. 이 교수는 “미국과 일본에선 해당 성분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해외에서 판로를 개척할 계획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염색 샴푸 논란을 뒤로 하고 탈모 샴푸로 재기한 이 교수가 꿈꾸는 다음 기술은 모낭이 필요 없는 모발 이식이다. 탈모 치료 병원들은 대개 머리 뒷부분에서 모낭이 담긴 두피를 통째로 절제해 다른 쪽에 이식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런 방식은 부작용이 생기고, 이식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 잘린 머리카락의 일부분만 있어도 이를 미용실에서 바로 머리에 심을 수 있다면 기존 방식의 모발 이식은 필요 없을 것이다. 이 교수는 "모낭이 없는 머리카락을 심을 수 있는 기술 개발을 끝낸 상태"라며 "1년 정도 걸리는 임상시험 단계를 밟기 위한 투자자를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