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접착제에서 시작해 염색 샴푸, 탈모 개선 샴푸까지 개발하게 됐네요. 과학은 특정 소수가 아닌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신념에 소비재에 집중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이해신(50)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화학과 석좌교수는 올해 4월 교내 창업 스타트업인 '폴리페놀팩토리'를 설립하고 탈모 개선과 모발 볼륨감을 제공하는 샴푸 제품을 출시했다. 이 샴푸는 품절이 이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일본과 미국, 캐나다 진출도 앞두고 있다.
16일 서울 용산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이 교수는 “대학원 시절부터 파고든 연구 분야가 접착 기능이 큰 물질인 ‘폴리페놀’”이라며 “폴리페놀로 머리카락이 모낭에서 쉽게 빠지지 않도록 붙잡는 게 탈모 개선 샴푸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폴리페놀을 활용해 만든 특허 성분이 들어 있어 모발 굵기도 두껍게 해 전체적으로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보이게 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우리 제품을 2주 정도 쓰면 탈모 현상이 70% 정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샴푸에 관심을 기울였던 건 아니다. 그가 상용화에 가장 먼저 나섰던 건 의료용 접착제였다. 혈관이나 손가락이 절단된 경우 의료용 바늘과 실을 이용해 봉합은 가능하지만 액체 같은 접착제를 이용해 붙이는 건 불가능하다. 이 교수는 홍합이 폴리페놀을 사용해 물속에서 바위에 붙는 것에 착안, 2010년 ‘이노테라피’라는 벤처 회사에서 의료용 접착제 개발에 몰두했다. 찢어진 혈관이나 손상된 장기를 수술 없이 봉합할 수 있는 기술을 직접 상용화하고 싶었던 꿈은 2019년 회사가 상장하면서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당시 대표이사의 매각 결정으로 기술 개발에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며 이 교수는 아쉬워했다.
의료용 접착제 상용화는 못 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폴리페놀이 특히 단백질에 가장 잘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단백질이 가장 많은 곳이 모발이라, 이 교수는 자연스럽게 헤어용품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 교수는 “폴리페놀은 공기에 노출되면 색이 변한다"며 “가장 먼저 염색 샴푸 개발에 나선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2010년 내놓은 염색 샴푸는 기존의 독한 염색약을 쓰지 않고 머리를 감는 것만으로도 염색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해당 샴푸에 함유된 특정 성분(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결국 판매가 중단됐다. 이 교수는 “미국과 일본에선 해당 성분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해외에서 판로를 개척할 계획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염색 샴푸 논란을 뒤로 하고 탈모 샴푸로 재기한 이 교수가 꿈꾸는 다음 기술은 모낭이 필요 없는 모발 이식이다. 탈모 치료 병원들은 대개 머리 뒷부분에서 모낭이 담긴 두피를 통째로 절제해 다른 쪽에 이식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런 방식은 부작용이 생기고, 이식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 잘린 머리카락의 일부분만 있어도 이를 미용실에서 바로 머리에 심을 수 있다면 기존 방식의 모발 이식은 필요 없을 것이다. 이 교수는 "모낭이 없는 머리카락을 심을 수 있는 기술 개발을 끝낸 상태"라며 "1년 정도 걸리는 임상시험 단계를 밟기 위한 투자자를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