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혼자 일하다 숨진 청년 노동자가 22일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됐다. 그러나 사망 원인을 두고 사측과 유족 측 입장이 엇갈리면서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8일 전주페이퍼와 민주노총 전북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A(19)씨의 추모식이 회사 대표이사를 비롯한 직원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거행됐다. A씨의 빈소는 전남 순천의료원에 차려졌다. 전주페이퍼 측은 전날 정문 앞 분향소에서 나흘째 단식 중이던 A씨의 어머니에게 애도와 사과의 뜻을 전한 뒤 보상과 관련해 유족 측이 요구한 사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양측이 합의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A씨에 대한 사망 원인은 여전히 의문이다. 전주페이퍼는 그간 사측과 외부기관 등의 5차례 걸친 조사에서 황화수소(H2S)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7일 재조사 결과, 사고 현장으로 가는 통로에서 4ppm가량의 황화수소가 검출됐다. 작업 가능 기준 상한인 10ppm을 넘기지는 않았으나, 30여분간 노출되면 호흡곤란과 어지럼증 등이 나타날 수 있는 수준이다. 전주페이퍼는 며칠째 폭염이 지속되고 습도가 높아진 데다 기계가 멈춘 상태에서 폐수 등이 정체돼 발생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앞서 유족과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죽음에 의문이 많다"며 "명확한 인재"라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입 직원이 유독가스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현장에 혼자 투입돼 사고 후 약 50분이 지난 시점에서야 발견됐다"며 "2인 1조 작업 수행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회사 측은 "사고 직후 산업안전보건공단 장비로 수차례 측정한 결과 황화수소는 검출되지 않았다"며 "회사 작업 지침상 설비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순찰은 2인 1조가 필수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번 재조사에서 미량의 황화수소가 검출되면서 A씨의 부검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주페이퍼 관계자는 "황화수소가 A씨 사망에 직접적 영향을 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1차 부검에서도 사인이 '심장비대증과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추정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현재 정밀 감식이 진행 중이어서 추후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며 "만일 황화수소 등이 사망에 영향을 줬다고 하면 사측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A씨는 지난달 16일 오전 9시 22분쯤 기계 점검을 위해 전주페이퍼 3층 설비실에 혼자 올라갔다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A씨 노트엔 '2024년 목표'와 '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등 다짐과 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더불어민주당·진보당·기본소득당 등 정치권도 나서서 A씨의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