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존재 사무실에서 만난 노종언(46) 변호사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그는 가수 구하라씨 유족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데 이어, 방송인 박수홍씨를 변호하는 등 피해자 입장에서 가족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지난달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친족상도례에 대해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사라져야 할 제도라고 주장해왔다. 가족법 전문가인 노 변호사를 만나 변화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물어봤다.
노 변호사는 친족상도례 위헌 결정에 대해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인정한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 중인 친족을 상대로 사기나 횡령, 배임 등 재산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의 재산을 빼돌리거나 아버지가 아들의 급여를 횡령해도 처벌받지 않게 하는 일종의 특례 규정이다. 친형에게 재산을 뺏겼다고 폭로한 박수홍씨 사건을 계기로 조명받게 됐다.
친족상도례는 가족 간에 벌어진 재산 다툼은 가급적 가족끼리 해결하라는 취지로 1953년 만들어졌다. 재산 문제로 인한 송사로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 컸으며, 대가족 시대에 적합한 제도로 인식됐다. 노 변호사는 "가족을 지키려고 도입됐던 제도가 지금은 가족을 붕괴시키는 범죄의 방패막이가 됐다"고 지적했다.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를 강제로 끌고가 부동산을 증여하도록 하고, 형제들보다 재산을 더 많이 상속받으려고 치매 부모에게 원치 않은 유언장을 작성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 신용카드에서 돈을 빼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자식들도 있다.
노 변호사는 "친족상도례 위헌 결정으로 앞으로 가족 간 재산 범죄도 처벌 받을 수 있다"며 "이런 사실만으로도 범죄 예방을 위한 안전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핵가족화와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족의 개념 자체가 (친족상도례가 만들어졌던) 71년 전과는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핏줄이라고 무조건 가족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가족의 책임과 의무, 정서적 교류를 해야만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에게는 '구하라법' 국회 통과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구하라법은 민법 1004조에 규정된 상속 결격 사유를 보강하는 내용이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양육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사망한 자녀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게 골자다. '유류분 제도'에 의해 상속인이라면 누구나 상속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을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가수 구하라씨의 친모는 딸과 20여 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2019년 구씨 사망 직후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공분을 샀다.
노 변호사는 2020년 3월 구하라씨의 친오빠를 대리하면서 구하라법 입법 청원 운동을 주도했다.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됐지만, 끝내 통과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하지만 올해 4월 헌재가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22대 국회에선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노 변호사는 "친족상도례 폐지와 마찬가지로 구하라법도 가족 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진정한 가족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구하라씨 유족을 변호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변호사로 살아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금융·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구씨 유족 및 박수홍씨 변호는 그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전하면서 친족상도례와 유류분 제도 폐지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노 변호사는 "구하라법 입법 청원이나 친족상도례 폐지 주장에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면서 "단지 피해자들이 구시대적 제도 때문에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고 밝혔다.
두 사건을 거치면서 그는 가족 분쟁 해결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때는 "가족 간 분란을 조장하고 법 체계를 흔든다"며 주류 법조계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노 변호사는 "앞으로도 피해자가 아픔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