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6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이 30% 이상의 득표율로 자신이 이끄는 여당 르네상스에 압승하자 즉각 의회를 해산했다. 조기 총선으로 국민 신임을 묻겠다는 정치적 승부수였다. 하지만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치러진 1차 총선은 되레 마크롱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일 발표된 투표 결과는 RN이 33.1%,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28%를 각각 득표한 반면, 르네상스를 포함한 범여권(앙상블ㆍENS)은 20% 득표에 그쳐 참패했다.
▦ 하원의원 577명을 뽑는 프랑스 총선은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 1차 투표에서 당선이 조기 확정된 후보는 80명 내외이고, 나머지는 오는 7일 실시되는 결선 2차 투표에서 당락이 결정된다. 하지만 출구조사로는 뜻밖의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최종적으로 RN이 240~270석, NFP가 180~200석을 얻는 반면 ENS는 60~90석을 얻는 데 그쳐 마크롱으로선 야당 총리 등장에 압도적인 여소야대 상황까지 직면할 공산이 커졌다.
▦ 2017년 프랑스 건국 이래 최연소 대통령(39세)으로 집권한 마크롱은 ‘제3지대’ 정책을 추구했다. 사회적으론 불평등 해소에 방점을 두면서, 경제적으론 법인세 감면 등 친기업적 성향의 우파정책을 추진했다. 엘리트로서 ‘원칙 있는 실용주의’를 추구한 셈이지만,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혁이나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올려 재정 안정을 꾀하는 등의 연금개혁을 추진하면서 대중적으로는 격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 그럼에도 2022년 대선 승리와 연임에 성공하면서 개혁 추진의 동력을 확보한 듯했으나, 곧바로 이어진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힘을 잃게 됐다. 이후 연금개혁에 대한 여전한 반감과 고물가에 대한 불만, 우크라이나 전쟁 적극 개입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 등이 작용해 이번 총선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나름의 원칙과 소신으로 개혁을 추구해온 마크롱의 위기를 보면서, 새삼 그리스 속담 ‘칼레파 타 칼라(좋은 일은 이루어지기 어렵다)’를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