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스이용자위원회는 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회의를 열고 사람 기사를 평가했다. 인터뷰, 인사·동정, 부고, 이밖의 '사람들&'면 콘텐츠를 살펴봤다. 8기 뉴스이용자위 마지막 회의인 이날 최영재 위원장을 비롯한 외부 위원 7명이 참석했고 지방 출장으로 불참한 장한익 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밝혔다. 한국일보에서는 사내 위원인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외에 송용창 뉴스룸국 뉴스1부문장이 함께 했다.
최 위원장은 해외 인사의 부고를 다루는 '가만한 당신' 연재를 제외하면 사람·인터뷰 콘텐츠에 한국일보만의 특별한 전략이나 기획이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선일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처럼 한국일보만의 대표 인터뷰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 지면이 "남는 기사들로 채운 지면 같다" "애매한 기사들을 모아둔 듯하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왔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인물을 찾아내 삶의 메시지를 주는 기사를 실으려는 노력이 느껴진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인물이야기에 재미와 흥미 요소가 부족하고, 제목도 다소 밋밋하다"는 지적이었다.
위원들은 사람 냄새 나는 기사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조영준 위원은 "사람 기사에서 중요한 건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라며 인물의 경제적 성취나 조직의 성과보다 삶과 경험을 다루는 사람 기사를 써주기를 요청했다. 주식부자로 떠오른 기업인 기사도 좋지만 세상을 떠나며 장기를 기증한 일반인의 사연이 보고 싶다는 것이다. 박찬희 위원은 '48년째 교통표시 오류 추적, 손으로 눌러쓴 26번째 ‘안전 건의서’'(6월 22일 자), '“범인 잡고 싶어 포토샵 실무 배워 CCTV수사 20년 노하우 책 집필”'(7월 1일 자)을 좋은 기사로 꼽으며 보통 사람의 선행, 자신의 자리에서 열정을 다하는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길 주문했다.
장민제 위원은 "한국일보 홈페이지에서 '사람' 코너를 누르면 인터뷰와 인사·동정, 부고, 사람일반 기사 등 모든 기사가 뒤섞여 있어 인터뷰 기획 등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며 "단순히 모아놓는 카테고리 분류보다는 독자에게 내세우고 싶은 콘텐츠를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의 UI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송 부문장은 "7월부터 새로운 인터뷰 기획 '조태성의 이슈메이커'를 시작했으니 지켜봐 달라. 홈페이지에서의 기사 배치도 개선하겠다"고 했다.
인터뷰 기사 중 '베테랑의 한끗'은 법조인, 경매사, 목수, 음악감독, 정원사 등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숨은 고수'들의 스토리를 담았다. 박경미·장한익 위원은 △'도구' '루틴' '시간' '한끗'이라는 부제를 달아 베테랑을 완성시킨 디테일을 드러낸 구성 △영상, 오디오, 사진 등 시청각 자료를 십분 활용한 방식이 세련되고 인상적이라고 짚었다. 예컨대 경매사가 서 있는 단상과 구두 사진, 뮤지컬 음악감독의 연필 메모가 적힌 악보 사진, 목수의 나무 자르는 소리, 뮤지컬 연습 현장 동영상이 인터뷰이의 일상을 포착하고 독자의 몰입감을 높여줬다는 것이다. 박수진 위원은 "인터뷰이 가운데 법조인 경매사 목수 등은 여성이고 정원사가 남성이었는데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다만 아쉬운 점으로 "기사의 길이가 길어 독자가 중도에 이탈할 여지가 있고, 여러 이야기가 혼재돼 핵심 메시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조영준 위원)는 의견이 있었다.
자살한 이의 가족이나 친구 등을 인터뷰한 '애도'는 죽음을 통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획으로 평가됐다. 박수진 위원은 "한국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한 일로 여겨지는데 죽음의 의미도 꺼내놓고 논의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조영준 위원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현실 뒤 숨겨진 이야기를 전하며 자살사별자들에게는 치유를, 독자에겐 이해와 공감을 제공한다"고 호응했다. 오디오 팟캐스트 형식에 대해서는 "글로 읽기보다 오디오로 접했을 때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 슬픔에 공감할 수 있어 마음의 울림이 배가 됐다"(장한익 위원)는 의견과 "최근 영상이나 오디오를 2배속으로 감상하거나 텍스트로 정보를 빠르게 얻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배속 기능과 자막, 텍스트 기사로 가독성을 높이면 좋겠다"(장민제 의원)는 의견이 나왔다. 또 '“나의 이선균씨, 정말 고마웠어요…작품으로 당신을 기억할게요”'(6월 28일) 기사는 유명인의 자살 자체에 관심이 쏠리고 자칫 미화하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당부(조영준·박찬희 위원)도 있었다.
장민제 위원은 "인터뷰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와 지불 의사가 높은 만큼 '베테랑의 한끗'과 '애도'는 사업화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다가 유료화할 경우 이용자 거부감이 예상보다 크기 때문에 유료화는 빠를수록 좋다"고 조언했다.
한국일보의 특화된 부고 기획 ‘가만한 당신’에 대해선 호평이 쏟아졌다. 박수진 위원은 “부고 기사는 고인에 대한 추모를 넘어 발자취와 공과에 대한 사회적 기록인데 ‘가만한 당신’은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기억할 만한 인물의 삶을 재구성한다”며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보다 인권과 자유, 차별 철폐, 동성혼 법제화 등 자기 신념과 인류 보편 가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을 소개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칭찬했다. 최 위원장은 “흔히 뉴욕타임스(NYT) 기사는 지식과 인사이트가 있어 논문에 인용해도 될 정도인데 '가만한 당신'이 그렇다. 2014년부터 300여 편의 기사는 고인을 함께 추모하면서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지식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게 한다. 발군의 성취다"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해외 인사만이 아니라 국내 인사의 부고도 다뤄 확장해 보라"고 권했다.
아울러 한국일보식 부고기사를 개발해 보라는 제안이 나왔다. 최 위원장은 "뉴욕타임스는 창간(1851년) 이후 부고 기사가 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뒤늦은 부고를 'Overlooked'라는 코너로 쓰고 있다.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하는 셈인데, 인공지능(AI)으로 기사를 쓰는 이 시대에 이런 자료야말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위원은 저명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부고 기사를 제안했다. 그는 "무명씨의 삶에서 의미 있는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아도 삶은 그 자체로 충만하다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박경미 위원은 "공직자 임명 기사는 (사람에 대한 정보만 아니라) 기관의 운영과 정책 방향을 담아줄 필요가 있다"며 필요한 정보 누락을 지적했다. 그는 "'카카오임팩트 새 이사장에 류석영 KAIST 교수'(6월 24일)의 경우 선임의 배경과 의의를 담아 재단 운영 방향을 엿볼 수 있었던 반면 윤병세 청와대재단 이사장 임명 기사(6월 13일 자)는 간단한 이력만을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CBS, 국회서 인구포럼 개최…저출생 극복 위한 22대 국회 역할 주제'(6월 26일)처럼 이미 종료된 행사를 다루면서도 각 정당이 어떤 정책을 발표하고 어떤 합의점과 차별성이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고 행사 자체를 공지하는 정도에 머무른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최원석 위원은 인물 기사에 대한 주목도를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인터뷰 기사는 여전히 인기 있는 장르다. 한국일보는 다른 신문이 아니라 '유퀴즈' '요정재형' 같은 방송·유튜브의 콘텐츠와 경쟁해야 한다. 낮술, 음식 등과 함께 하는 유튜브 인터뷰의 재미를 똑같이 따라가긴 어렵더라도 인터뷰이를 무장해제시키는 장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 위원은 새로운 인터뷰 형식을 시도해 볼 것을 제안했다. △미국 인기 방송인 스티븐 콜베어가 유명인을 인터뷰하기 전 가벼운 질문을 던져 시청자들에게 인간적인 면을 알게 하는 것 △뉴욕타임스에서 논설위원 3, 4명이 심층 질문을 던지는 공동 인터뷰를 예로 들었다. 최 위원은 "2022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참모였던 수라즈 파텔 인터뷰는 논설위원 4명이 참여해 크고 작은 질문을 던져 A4지 14쪽에 이르는 인터뷰를 냈다"고 부연했다.
독자들의 의견을 싣는 독자투고란을 확대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박수진 위원은 "독자투고란은 시민들의 능동적인 의견 개진과 공공의제에 대한 토론의 폭을 확대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서 언론의 필수 기능이다. 학생, 전업 주부, 외국인 노동자, 이주민 등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가 적게 나오는 이들이 사회를 향해 건의나 제안, 비판, 항변 등 자기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도록 고정 지면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기고란이 있기는 하지만 언론이 독자와 소통하는 게 중요해진 현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홈페이지 댓글과는 다른 소통이 필요하다. 상시적인 독자 투고와 의견 개진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좋은 기사로는 창간 70주년 특별 기획 '초당적 ‘30년 전략’ 짜자'(6월 17일~7월 4일 자)가 꼽혔다. 정파를 떠나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슈를 정조준해 언론의 의제설정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최 위원장은 "정쟁으로 정책이 실종된 현실에서 '정말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가'를 다루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창간 70주년을 맞은 한국일보가 비전을 제시한 좋은 기획"이라고 말했다. 박찬희 위원은 "외국인 노동자 지원 예산이 삭감되고 편견도 여전한 상황에서 이주 청소년과 외국인 노동자의 불안한 현실을 짚은 기획의 3부 이민정책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박경미 위원은 '배계규 화백의 이 사람'에 대해 "감각적 캐리커처와 시사성이 잘 어우러진 코너로 젠슨 황(6월 29일 자),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6월 8일 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동해 석유 매장 가능성을 자문한 액트지오사의 고문 비토르 아브레우를 다룬 '140억 배럴의 사나이? 아브레우에게 기회 올까'(6월 15일 자)는 '기회'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갸웃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애완견' 발언을 비판한 칼럼 '이 대표, 얻다 대고 ‘애완견’인가'(6월 18일 자)에 대해 "애완견 발언은 부적절하나 너무 감정적인 대응으로 우군을 얻을 수 있을지 우려됐다"고 했다. 또 '"구속 상태 김만배가 대선 직전 이재명 캠프와 소통"… 검찰, 진술 확보'(7월 3일 자) 기사에 대해 "김만배가 말한 걸 들었다는 정도의 검찰발 전언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