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돌연 유럽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를 정조준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지지 차원에서 연일 이스라엘 북부에 공습을 퍼붓는 헤즈볼라의 타깃으로 키프로스가 소환된 이유는 무엇일까.
20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유럽연합(EU) 국가가 끌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며 이스라엘과 키프로스 간 관계를 조명했다. 앞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전날 TV 연설을 통해 "공항과 기지를 이스라엘에 개방한다면 키프로스를 전쟁 일부로 여기고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압박은 동지중해를 매개로 한 키프로스와 이스라엘 간 군사 협력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인구 92만 명에 불과한 키프로스는 EU 회원국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중동 쪽에 치우쳐 있다. 서쪽 그리스보다 동쪽의 레바논, 이스라엘 해안과 더 가깝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와는 비행기로 40분 거리다.
특히 키프로스의 지형이 레바논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와의 전쟁에 대비한 훈련을 최근 몇 년간 키프로스에서 실시해 왔다. 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특수부대를 포함한 이스라엘군 수백 명은 2022년 5월 한 달간 키프로스에서 대규모 모의훈련을 치렀다. 이스라엘 역대 최대 규모의 워게임(전쟁 시뮬레이션)이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적의 영토 깊숙한 곳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군의 준비태세와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 목표"라며 "레바논과 유사한 산악 지형의 도시와 농촌 등 다양한 지형에서 훈련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군과 키프로스군의 합동군사훈련은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5월에 키프로스에서 실시됐다고 CNN은 전했다. 한 서방 외교관은 "헤즈볼라에는 도발로 받아들여졌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헤즈볼라의 위협 직후 키프로스는 중립을 강조하면서 몸을 사렸다. 콘스탄티누스 레팀비요티스 키프로스 정부 대변인은 이날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키프로스는 어떠한 전쟁이나 분쟁에도 관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키프로스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랍 국가들 편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동지중해 연안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된 이후 이스라엘과 관계가 긴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