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1시 20분경,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영상 35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한 남성 행인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의 거친 목소리가 향한 곳은 개 식용 종식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연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었습니다. 발언을 준비하던 활동가는 행인을 제지하려 했지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운전하던 오토바이를 몰고 현장을 벗어났습니다.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개 식용 논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 단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개 식용 종식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국내에서 개 식용은 금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대규모 장외집회는 사라졌지만, 개 식용 논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길거리가 아닌 헌법재판소가 그 전장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지난 3월, 식용견 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육견협회는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이 재산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이날 모인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동변), ‘동물해방물결’은 육견단체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이 합헌인 이유를 설명하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동변 소속 김도희 변호사는 “법은 고정불변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과 조응하며 변화한다”며 “1990년대 말에는 국민의 86%가 개 식용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82% 개 식용 금지 법안에 찬성한다”고 법안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육견단체의 ‘재산권, 직업의 자유 침해’ 주장에 대한 반박도 있었습니다. 동변 송시현 변호사는 “헌재 판례에 따르면 개식용 관련 산업을 폐업하며 입는 손실은 헌법 23조가 보장하는 재산권 대상이 아니다”라며 “직업의 자유 역시 개가 아닌 다른 동물을 도축할 직업의 자유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고 말했습니다. 송 변호사는 “무엇보다 개 식용 종식법으로 제한될 사익에 비해 동물의 생명 보호, 사람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 개 식용 종식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해소 등 얻게 될 공익이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육견단체가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반박도 있었습니다. 동변 김소리 변호사는 “효력정지 가처분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야 하지만,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은 3년간 처벌을 유예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도대체 어떤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존재하기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어서 “정부는 이미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을 이행하기 위해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는 등 절차를 밟고 있다”며 “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되면 전업, 폐업 지원 절차를 중단시키는 만큼 영업을 중단하려는 이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는 1월, 개 식용 종식 특별법 통과 이후 후속 절차를 전담하는 ‘개 식용 종식 추진단’을 설치했습니다. 추진단에는 농식품부 산하기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동물단체와 외부 전문가도 참여했습니다. 추진단이 구성된 뒤에는 2월부터 5월까지 개 사육농장 등 관련 업체 파악에 돌입했습니다.
정부가 확인한 개 식용 관련 업체는 총 5,625곳이었습니다. 분야별로 △개 사육농장 1,507곳 △개 식용 도축상인 163명 △개 식용 유통상인 1,679명 △개 식용 식품접객업 2,276곳 등입니다. 이들 업체들은 8월 5일까지 전업계획서를 제출해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견단체들은 이 계획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육견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최소 10년에서 20년 할 수 있는 산업을 갑자기 중단시켰다"며 “제대로 된 보상안을 내놓아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내는 등의 행동에 나선 배경입니다.
지원 규모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정부는 개 사육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기에 사육농장에 대한 지원금을 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도축 및 유통업체는 불법성이 있는 만큼 다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육견단체들은 ‘제대로 된 보상안’에 대해 사육하는 개 1마리당 200만원 수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가축분뇨배출시설 신고 면적을 상한으로 해 지원금을 산정하고, 폐업 시기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구조로 검토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특히 사육 동물 수를 기준으로 보상안을 정할 경우 과도한 지원을 노리고 운영 규모를 일시적으로 확대하는 행위가 있을 수 있다며 이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점검해 지원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불법 개 도살 현장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개 도살이 이뤄진 현장에서는 개 6마리가 이미 죽은 상태였고, 살아남은 개 6마리는 구조돼 화성시 동물보호소에서 돌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흔히 ‘개 전기도살’이라 부르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개를 전기 쇠꼬챙이로 약 10초간 충격을 준 뒤 도살하는 행위입니다. 이 같은 도살 방식은 이미 2020년 대법원 판결로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확정됐습니다. 잔인한 방식으로 개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불법 개 도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화성시 농장 외에도 지난 12일 제주 지역에서 키우던 개를 먹기 위해 도살한 남성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입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3월에도 경기 의정부시 외곽에서 불법 개 도살 현장이 적발됐습니다.
동물단체들은 육견단체의 헌법소원이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개 식용 종식법을 이행해 나갈 때이지 제동을 걸 때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동물자유연대 강재원 선임활동가 또한 “개 식용 종식을 뛰어넘어 인간과 동물에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헌법재판관들의 지혜로운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특별법 통과 이후 5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특별법을 둘러싼 여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개 식용 없는 대한민국’이 현실이 될 시점이 언제일지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