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한러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무슨 차이일까[북러정상회담]

입력
2024.06.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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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급격한 관계 격상
전략적 이익 일치 뜻… 안보·경제 아우르는 협력
과잉해석은 금물… "특수관계 선 그어" 해석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퀀텀 점프'에 준하는 급격한 관계 격상인 데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한러보다 더 높은 수준의 밀착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협력 관계 명칭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며 과잉 해석은 금물이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러시아가 북한을 한러관계의 지렛대로 삼기 위해 합의의 수위를 조절했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북러가 이번에 맺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국가 간 파트너십에 붙이는 통상적 명칭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동반자' '전략적' '포괄적' 등의 수식어가 붙을수록 파트너십의 강도가 세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가장 높은 수준의 양자 관계에서 주로 쓰인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같은 명칭에 '변주'를 주는 경우가 많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동맹의 전 단계로 묶되, 나라마다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과는 '신시대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인도와는 '특별하고 특권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모로코·투르크메니스탄·알제리와는 '강화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이번에 북한과 맺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남아프리카공화국·몽골·베트남·아르헨티나·우즈베키스탄 등과 맺고 있다. 한국의 경우엔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방러 당시 공동성명을 통해 기존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포괄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대신 협력이라는 말이 더 붙은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러관계가 파격적으로 상승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1961년 체결된 조·소 동맹 조약이 1996년 폐기됐고, 2000년 '선린 우호 관계'를 맺은 게 마지막이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양측의 전략적 이익이 상당 부분 일치했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또한 이 같은 협력 필요성이 '포괄적'이란 표현에 담겼고, 군사, 경제, 인적 교류 등 전 분야에 걸친 협력 관계가 됐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한국과 서방이 가장 우려하는 군사적 협력 역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명칭에 녹아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이유로 한러관계가 북러관계에 뒤떨어지게 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우리 정부는 두 명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실제 주요 7개국(G7) 등 사회주의권의 전통적 우호국이 아닌 나라 중 러시아가 한국과 같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보다 높은 관계를 설정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러 교역액이 북러 교역액의 530배에 이르는 상황에서 명칭만으로 두 국가 간 관계를 비교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태림 국립외교원 교수는 "러시아는 현재로선 북한이 원하는 핵심 군사기술을 서둘러 줄 이유가 없지만, 북한을 우군으로 붙들어 두는 것도 중요하다"며 "푸틴의 방북과 격상된 조약 체결은 북한을 달래기 위한 상징적 선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순히 국제사회를 의식한 용어라는 해석도 있다.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는 "양국 관계가 특수관계가 아니라 일반 국가들 간 정상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쓴 것"이라며 "우리가 주시하는 군사 안보 협력 부분은 '전략적 관계'라는 표현에 에둘러서 넣은, 북한을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한 수위 조절로 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정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