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1809~1882ㆍ영국)이 ‘인간도 다른 생물의 진화와 다를 바 없는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한 이후 많은 서구 과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인류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유인원들이 사는 동아프리카와 함께 동남아시아 지역도 가장 유력한 ‘인류의 조상이 살던 곳’으로 기대됐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두 차례나 ‘아시아가 인류의 기원지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첫 번째는 지난 1970년대 인도 북부 히말라야 남쪽 사면의 시왈리크(Siwalik)에서 라마피테쿠스(Ramapithecus)가 발견됐을 때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세기 말 인류학자 외젠 뒤부아(1858~1940ㆍ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트리닐(Trinil)에서 피테칸트로푸스(Pithecantrhopus) 에렉투스(자바 원인)를 발견했을 때다. 이 화석 인류는 넙다리뼈 상태 등을 토대로 ‘직립 보행’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외젠 뒤부아의 이 발견은 의미가 컸다. 유라시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초기 호모 중의 하나가 이 섬에서 살았고 바로 그 증거가 자바섬 중부 상기란(Sangiran)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열대 우림은 유라시아 인류진화연구에 가장 뜨거운 논쟁이 지속되는 지역이 됐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솔로(Solo)시 일대는 인도네시아 왕국의 중심지다. 그래서 상기란 유적 이외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보로부두르(Borobudur) 불교사원 등 유적지가 많다. 상기란 유적 박물관의 전망대 앞에는 열대우림이 시퍼런 구름같이 펼쳐져 있는데, 마치 인간의 역사를 덮고 있는 듯하다.
열대우림(熱帶雨林). 고온다습한 이 지역에서 전 지구 생물의 반 이상이 태어났고, 또 극심한 경쟁으로 수많은 종이 절멸한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자바의 열대우림은 200만 년 인류사가 펼쳐진 치열한 공간으로 생각되기에는 너무도 평화롭고 원시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 속에는 고인류들이 남긴 갖가지 흔적들과 신비로운 인류 진화의 비밀이 숨어 있기에 흥분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자바섬은 환태평양조산대(불의 고리)의 하나인 ‘순다 고리’에 속한다. 그래서 섬 남쪽으로 화산들이 줄지어 있다. 그리고 상기란 유적은 지질학자들이 ‘상기란 돔’(Sangiran Dome)이라고 부르는 지질구조 속에 있다. 방패를 엎어놓은 것 같은 지형인데 지구 내부의 마그마가 지표면을 밀어 올려서 방패 모양의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지역이 원래 낮은 바다였다는 것이다. 강물에 의한 퇴적층이 그 위를 덮었고, 이후 융기 과정을 거쳐 지금의 구릉성 산지가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높아진 산지는 이후 침식되면서 고인류 화석들이 드러나게 됐다. 아마도 고인류의 시체가 물가에서 갑작스럽게 매몰된 뒤 화석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상기란 유적지 근처 논밭에서는 조개 화석들이 발견된다. 이 일대가 고대에는 물속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자바섬 등 인도네시아의 큰 섬들은 가장 이른 시기에 인류 화석 연구가 시작된 곳이다. 인간 진화에 대한 다윈의 새로운 이론이 유럽을 뒤흔든 직후에 태어난 외젠 뒤부아는 어릴 적 고향집 주변의 유적에서 화석을 수집할 정도로 인류 진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네덜란드령이었던 이곳 인도네시아에 군의관으로 자원해 온 뒤 동굴 등 곳곳에 화석이 있을 만한 곳을 조사한 끝에 1890년대 초 솔로 강변의 트리닐에서 두개골과 허벅지 다리뼈를 발견했다. 그리고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rhopus erectus·Ape-like Manㆍ유인원같이 생겼지만 직립한 사람)로 명명했다. 학명이 보여주듯이, ‘이것이 바로 최초로 직립한 인간’이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아프리카가 인류의 발상지로 지목되지만, 발견 당시 동남아시아 열대우림 지역이 인류의 발상지로 알려지게 된 일대 사건이었다.
이 발견으로 뒤부아는 유명해졌지만, 유럽 학자들의 시기와 질투로 가치가 저평가됐다. 속이 상해서 다른 학자들에게 화석을 보여주지도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약 40년 뒤 중국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이와 유사한 인류 화석(북경원인)이 발견됐고, 뒤부아의 자바원인도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뒤부아가 상기란 유적을 간과하지 않았다면 그동안 마음의 고생은 없었을 수도 있었다. 트리닐 화석발견 이전에 상기란 유적을 조사하였지만 화석이 적다는 이유로 포기하였다. 그런데, 지난 20세기 중엽에 독일 출신 인류학자 쾨니히스발트(G.H.R. Koenigswald)가 완전한 형태의 피테칸트로푸스의 두개골을 상기란 유적에서 발견함으로써 아시아 최고의 고인류화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뒤부아가 사망하기 불과 몇 년 전 일이니 아마도 크게 통탄했을 일이다. 그 발견 이후 현대까지 이어지는 조사에서 엄청난 양의 동물화석과 함께 100여 구체분에 이르는 인류화석이 발굴됐으니 그로서는 하늘에서도 아쉬울 듯하다.
피테칸트로푸스. 발견 당시 기괴한 인류의 모습에 대한 인상을 표현한 이름이다. 눈두덩 뼈가 튀어나오고, 앞이마도 너무 경사져서 ‘이마가 있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 뒷머리는 독일군 철모처럼 아랫부분이 넓적하다. 또 머리 위 정수리가 동그랗지 않고 뼈가 전후방향으로 융기된 모습이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원시적이다. 그렇다고 유인원으로 보기에는 ‘사람’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인류 화석의 이미지가 ‘사람답다’로 바뀐 계기가 있다. 바로 ‘호모’(Homo)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대단히 오래된 종이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고르지에서 발견된 이후, 인류 종을 큰 틀에서 2가지 속(屬)명으로 구분하게 됐다. 오래된 것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보다 더 진화된 형태를 ‘호모’라고 분류하게 됐다. 그래서 피테칸트로푸스라고 명명된 자바원인은 북경원인과 함께 ‘사람다운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명명하게 된 것이다. 피테칸트로푸스는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오래된 인류 조상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그 후에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한 인류, 즉 호모속(屬)으로 확정된 셈이다.
호모 에렉투스만큼 두개골의 용량이 다양한 인류 종은 없을 것이다. 두개골 용적이 800㏄ 남짓부터 1,200㏄를 넘기는 경우까지 무려 500㏄에 가까운 편차를 보인다. 그만큼 다양한 단계, 혹은 모습을 가진 인류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상기란 유적은 1930년대 중반에 최초로 발견 이후, 가장 완전한 두개골 화석이라고 평가되는 ‘상기란 17호’(130만 년 전 추정)를 포함해 100개체가 넘는 다양한 모습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편들이 발견됐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된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에서 보이는 특징들은 ‘아시아적’인 특징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이 두뇌 용적이 비슷한 아프리카 고인류들을 ‘에르가스테르’(H. ergaster)라고 구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아시아적인 특징들은 아마도 유라시아 대륙의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인류 진화의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호모 에렉투스도 바다를 건널 수 있었을까? 자바섬이 있는 순다 바다는 우리나라 서해처럼 매우 얕은 바다로, 빙하시대엔 해수면이 낮아져서 육지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렇게 해수면이 낮아지는 시기에 고인류는 자바 등 다른 섬으로 확산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언제일까? 그동안은 층위학적 연대 측정법 결과를 토대로, 상기란 고인류 출현의 최초 연대를 약 150만 년 전으로 봤다. 하지만 최근 우주선 연대 측정법 결과, 순다 지역이 대륙과 연결돼 있었던 약 180만 년 전에 인류가 처음으로 이곳에 확산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인류 화석이 재퇴적됐음을 감안한다면, 고인류화석이 발견된 층위보다 더 이른 시기에 자바섬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자바섬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의 연대 차이가 큰 것은 아마도 그 시기 이후의 여러 차례 연륙(連陸)된 시기에 이동해 온 것으로 생각된다.
진화는 인류의 머나먼 조상부터 시작됐다. 이렇게 진화의 첫걸음을 뗀 이후, 현대 인류는 ‘인조 인간을 만들어내는 인간’으로 지적인 진화를 하고 있다. 이 과정은 과거 수많은 역경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진화 전략이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21세기 들어 동남아시아에서 ‘호빗’(Hobbit)이란 별명이 붙은 난쟁이 고인류가 발견됐을 때 이 지역 열대우림이 인류 진화의 신비한 공간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 겉으로는 평화스럽고 풍성한 열대우림 속에서 인류는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경쟁을 거듭했을 것이다. 특히 기후변동에 의한 생태환경의 급격한 변화 역시 생존을 위협하는 큰 도전이었다. 인류가 열대우림에서 겪었던 경험은 결국 다른 동물들처럼 북으로 향하는 성공적인 여정의 밑천이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