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한국이 주재하는 북한 인권 회의가 처음 열렸다.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이 주민 인권 상황과 결부돼 있는지를 놓고 한국·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12일(현지 시간) 안보리는 지난해 8월 이후 10개월 만에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공식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2014~2017년 매년 개최됐지만 이후 한동안 열리지 않다가 작년 8월 6년 만에 재개됐다. 이날 회의는 6월 의장국 한국의 황준국 주유엔 대사가 주재했다. 한국이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회의를 주재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 인권이 안보리 의제로 적절하지 않다고 여긴 중러의 이의 제기로 회의 전 안건 채택 여부 결정을 위한 절차 투표가 이뤄졌다. 그 결과 15개 이사국 중 12개국이 회의 개최에 찬성했다. 9개국 이상이 찬성하면 회의가 시작된다. 중러가 안건 채택에 반대했고 모잠비크는 기권했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은 적용되지 않는다.
12개국 찬성은 북한 인권 회의 절차 투표 사상 최다 찬성이라고 주유엔 한국대표부는 설명했다. 2014~2017년 안보리 북한 인권 회의도 절차 투표를 거쳤다.
북한 인권은 국제 안보와 무관하다는 게 중러의 주장이다. 겅솽 주유엔 중국 차석대사는 “북한 인권 상황은 국제 평화 및 안보에 대한 위협 요인이 아니다”라며 “안보리의 북한 인권 문제 개입은 한반도 긴장 완화 대신 적대감 강화, 대결 심화를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한반도 상황을 왜곡하고 실제 한반도 안보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게 서방의 유일한 목표”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미일은 두 문제가 불가분이라고 본다. 황 대사는 “북한은 핵과 인권 침해가 함께 달리는 쌍두마차와 같다”며 “인권 침해가 멈추면 핵무기 개발도 함께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북한 정권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위해 국내외 강제 노동과 노동자 착취에 의존하고 있다”며 “북한을 보호하려는 중러의 명백한 노력이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야마자키 가즈유키 주유엔 일본대사는 “북한이 국제 평화 및 안보 증진을 위해 노력할 때까지 안보리는 북한 인권 의제 회의를 계속 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의는 북한에 인권 상황 악화 책임을 물었다. 보고자로 나선 폴커 투르크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최근 북한에서 거주 이전 및 표현의 자유 억압이 심해졌고, 식량 부족으로 사회경제적인 생활 여건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혹독해졌다고 평가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국경 폐쇄 이후 북한 인권 상황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했다”며 “1990년대 말 대기근 뒤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에 국제사회가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시민사회 대표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탈북 청년 김금혁(32)씨는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 편에 서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한미일 등 57개국과 유럽연합(EU)은 이날 안보리 회의 시작에 앞서 북한 인권 상황을 비난하는 약식 회견을 열기도 했다. 공동 회견 참여국이 지난해 8월 회의 때보다 5개국 많아졌다고 주유엔 한국대표부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