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 1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재건회의를 하루 앞두고 주무기관 수장인 우크라이나 재건청장이 정부를 공개 비판하면서 사의를 표명, 잡음을 낳고 있다. 지난달 올렉산드르 쿠브라코우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장관 해임에 이어 한 달 간격으로 주요 기관장이 연달아 물러난 모양새로, 전황 악화 속 뒤숭숭한 내부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스타파 나옘 우크라이나 재건청장은 1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의 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구조적 장애물로 인해 사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 정권하에서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취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윗선'을 직격하고 나선 셈이다.
그는 "우리는 끊임없는 반대와 저항, 인위적 장벽에 직면했다"며 "설명할 수 없는 관료주의적 지체로 고통을 받고 있고 이 때문에 시장, 지방당국, 시민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썼다. 정부가 물 공급, 에너지 보호 등을 위해 유럽투자은행에서 대출받은 1억5,000만 달러 집행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등 구체적 사례도 나열했다.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재건청 직원들의 임금이 삭감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의 사임은 서방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모이는 우크라이나 재건회의 직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우크라이나 재건청은 러시아 침공 이후 공격에 노출된 에너지, 교통 등 인프라 재건과 보호를 위해 신설된 기관이다. 서방으로부터 받는 재건 지원금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회의에는 당연히 주무기관장인 나옘 청장이 참석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수행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레 대통령실로부터 참석자 명단 배제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사실상 경질'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나옘 청장의 주장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나옘 청장은 자신과 함께 일하던 쿠브라코우 장관이 지난달 해임된 것을 놓고도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작업을 박해하고 불신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임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쿠브라코우 장관은 정부 내 투명성 강화 등을 주장하는 개혁파로 서방에서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요 인사 교체는 전황이 악화된 올해 들어 특히 잦다. 지난 2월 자신의 정적으로 불렸던 발레리 잘루즈니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을 해임한 게 대표적이다. 3월 30일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하루에만 보좌진 6명을 대거 교체하기도 했다.
서방 언론들은 전쟁 장기화 속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강화하려 나서면서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서방 관리들을 인용, "최근 몇 달 동안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시한 일련의 해고, 사임, 정부 개편이 우크라이나의 국방 및 재건 자금을 조달하는 서방 파트너들 사이에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