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로 가려고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경배했다. 부인이 왕께 이르기를, ‘이곳에 큰 가람(절)을 세우는 것이 진실로 바라는 바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허락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삼국시대 최대 사찰 전북 익산 미륵사의 창건 설화다. 백제 무왕(?~641)은 선화공주와 지명법사를 만나 용화산(현재 미륵산) 아래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을 방법을 의논했다. 지명법사는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헐어 못을 평지로 만들었다. 이는 상상력이 가미된 설화이지만, 미륵사 창건 당시 터에 연못이 있었다는 자연환경을 알려주는 사료다.
물이 고여 있던 땅에 백제인들은 어떻게 절을 지었을까.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11일 결과를 공개한 19차 미륵사지 발굴 조사에서 이를 가능하게 한 백제 토목 기술의 실마리가 밝혀졌다.
이번 조사는 절을 짓기 전의 자연지형, 건물 기초 구조, 축조에 이르는 토목 공정을 확인하는 데에 집중됐다. 연구소는 "미륵사지 중원 금당지(사찰 중앙의 본당으로, 본존불을 모신 건물이 위치한 터) 건물 기둥 기초 시설에서 흙과 깬돌이 함께 발견됐다"고 했다. 이는 기둥 자리를 깊게 판 뒤 흙과 깬돌을 함께 쌓아 기초 공사를 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건축 기법이 백제 건물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그간 백제 건축물 기초 부분에선 주로 다진 흙만 나왔다.
1,400년 전 백제인들은 사찰 터의 자연환경과 지표의 성질에 맞춰 돌을 섞어 쓴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는 북쪽 미륵산에서 흘러 내려온 계곡물로 인해 땅 표면에 수분이 많고, 땅 아래엔 지하수가 흐른다. 연구소 관계자는 "건물 터를 더 단단하게 보완하고 지하수 배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륵사지는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 최대 사찰이 있었던 터다. 1966년 발굴조사 시작 이후 권역별 조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