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과 이상한 사정 정국

입력
2024.06.10 04:30
27면
'생식기능 활성화와 성관계 촉진'
정부·지자체의 괴이한 인구 대책

모태 솔로인 지인의 이야기다. 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어머니'라고 불렸을 때 그는 올 게 왔다 싶었다. '명명백백 늙었구나.' 억울하기도, 궁금하기도 해서 생물오징어를 사면서 물었단다. "어떤 사람에게 어머니라고 하나요?" "보면 대충 알죠." "어머니로 보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르나요?" "안 부릅니다."

이 일화엔 여러 겹의 메시지가 있다. 자녀의 유무는 '상태'일 뿐 아니라 '정체성'이기도 해서 사람들이 '부모'와 '부모 아닌 사람'으로 간편하게 분류되곤 한다는 것. 수산물 코너 상인이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것처럼, 부모 아닌 사람의 호칭이 따로 없을 만큼 '부모인 상태'가 사회의 표준이자 규범으로 여겨진다는 것.

그렇다면 '부모 아닌 상태'는 개인의 일탈이고 흑화일까. 최근 번역돼 나온 미국 시카고대학 역사학과 교수 페기 오도널 헤핑턴의 책 '엄마 아닌 여자들'(북다 발행)은 역사적 논거를 들어 아니라고 말한다. "젊은 애들이 문제야." 인구 감소의 책임을 떠넘기는 얄팍한 말의 오류도 논박한다.

저자는 인류가 "생식이라는 생물학적 행위 수행에서 집단적 실패를 하고 있다"고 본다. 세상이 복잡다단하게 나빠지고 있어서다. 혼자 벌면 혼자만 겨우 먹고살 수 있게 설계된 경제사회 시스템, 모성·부성의 억제를 우대하는 노동환경, 임신·출산의 위험과 부담을 개인이 짊어지게 만든 핵가족화와 양육공동체의 붕괴,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미래를 위협하는 환경 파괴와 비인간화와 각종 폭력,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각국 정부의 무능까지, 모든 것이 쌓이고 얽혀 저출생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책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저출생 현상은 개인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기에 개인을 설득하거나 질책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저출생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구조적이어서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 간추리고 보니 창발적 진단도 아니다. 저출생 해법을 고민해 본 누구라도 이쯤은 알고 있을 터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저출생을 여전히 개인의 문제, 그것도 개개인의 생식기를 잘 쓰게 하면 풀릴 문제로 본다. 생식기 주변 근육을 '조이는'도 아닌 "쪼이는" 케겔 체조 보급, "파워풀 시민을 위한" 정자 활동성 분석기 무료 배포, 가임기 남녀의 집단 미팅 주선, 여학생의 성적을 끌어내려서라도 남학생과 짝지어 주겠다는 여자아이의 취학 연령 하향 조정, 과거는 묻지 않겠다는 정관·난관 복원 시술비 지원... 최근 쏟아진 저출생 대책들은 한곳을 향한다. '성관계 촉진.'

성관계의 목적을 출산으로 규정한다는 면에서 낡았고, 몸을 도구로 본다는 면에서 위험천만하며, 내밀한 영역을 공공이 침범한다는 면에서 폭력적이다. 또한 교묘하게 성차별적이다. 성관계의 잠재적 결과인 임신·출산·양육의 책임을 여성이 훨씬 더 많이 진다는 것도, 그렇기에 여성이 임신유지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도 무시하고 "너를 임신케 하리라!"는 전체주의적 일념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책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못났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사정(事情)이 있다. 그 사정들을 정확히 헤아리는 것에서 저출생 대책 수립을 시작해야 할 국가가 다른 이름의 사정(射精)부터 강권한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19금 코미디다.




최문선 문화부장